<열린마당> 기술의 가치

윤철오 금호석유화학 금호화학연구소 전지연구팀장

 15세기 서유럽 사람들은 항해 및 측량 기술을 총동원해 동서양을 왕래하면서 무역으로 부를 축적했다.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고 새로운 항로 개척에 나선 이들은 탐험의 증거물로 취득했던 후추·향료·광석 등을 판매한 데 이어 항해의 단위조직으로 회사를 설립, 국가나 자본가의 후원을 받아 탐험을 활성화하는 등 사회발전의 기틀이 됐다. 항해 및 측량이라는 기술을 무기로 삼아 새로운 항로를 개척한 이들의 모험정신이 사회발전으로 연결된 것이다.

 현대사회가 과학기술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인류사회가 기술적 진보를 토대로 발전해 왔다는 역사적 사실과 새로운 기술이 인류에 가져다줄 수 있는 부가가치에 대한 기대 때문이다.

 새로운 원리가 기술로 정립되고 실질적으로 사회에 반영되기까지는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현대사회에서 이러한 과정은 과거에 비해 상당히 단축돼 한 세대에서 성취할 수 있을 정도로 발전했으며 최근에는 기술개발의 부가가치를 정량적으로 극대화하는 경영 방식을 도입한 벤처기업이 출현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새로운 기술이 성립됐다고 해서 그 기술이 반드시 사회에 직접 작용하는 것은 아니다.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 등을 선보인 우리의 기술역사가 세계적으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

 이처럼 기술들은 미래사회에 대한 역할과 부가가치에 대한 안목에 따라 꽃피울 수도 있고 사장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새로운 기술을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는 만큼 창출된 기술의 새로운 부가가치를 명확히 인식하고 정확히 평가하고자 하는 노력도 중요한 것은 아닐까.

 우리 산업 가운데 많은 부분이 외국의 기술 도입에 의존해 이루어졌고 이러한 기술은 질적 성장보다는 양적 팽창에 치우쳐 실제로 기술에 대한 미래 가치와 안목에 대한 전문성이 상당히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과학기술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에 힘입어 새로운 미래를 창조할 국내 기술이 출현하는 시대가 도래했으나 이러한 프런티어적 기술들이 국내에서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고 해외 전문가를 통해 우회되어야 하는 모순도 있었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에 힘입어 벤처 부문이 크게 활성화되고 있으나 기술의 미래가치를 기업의 매출규모로 판단해야 할지, 증권시세로 판단해야 할지 등은 아직까지도 정확하지 않다. 가치있는 신기술에 대한 투자가 효율적으로 이루어지려면 투자자들의 판단을 위해 객관적으로 신뢰할 수 있는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

 기술의 미래가치를 평가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은 사실이지만 어렵다고 해서 불가능한 것으로 취급돼서는 안된다.

 선진국은 이미 특허, 시장 및 투자 전망 등 기술과 경제성에 대한 전문적인 분석을 기초로 이를 객관화하는 체계를 준비했고 또 이것이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서로의 평가기준을 존중하고 이견을 좁히기 위한 전문적인 접근이 필요하다.

 우리가 만든 기술의 미래가치를 스스로 가늠하고 이를 상호 신뢰할 수 있는 평가기준과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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