컴퓨터업계 골리앗 "컴팩", 몸집 주체못해 "뒤뚱"

 다윗에서 골리앗으로 변신한 컴팩이 휘청거리고 있다. 비대해진 몸집을 주체하지 못해서일까.

 민첩함을 자랑하던 조직력도 여기저기 붙은 군살로 눈에 띄게 둔해졌다. 석달째로 접어든 과도 경영체제는 아직 차기 최고경영자(CEO)도 정하지 못한 채 안개정국을 헤쳐 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컴팩의 이상징후는 지난해 초부터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시기적으로는 디지털 이퀴프먼트를 84억달러라는 거액에 인수한 시점이다.

 대표종목인 PC시장에서의 판매부진과 저가경쟁에 따른 수익성 악화, 과잉재고는 1년 넘게 컴팩을 괴롭히고 있다. PC시장 점유율도 경쟁업체들에 계속 밀려 불안한 왕좌를 지키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2위 델컴퓨터의 무서운 상승세는 바로 컴팩의 시장점유율을 제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커다란 위협이 아닐 수 없다.

 디지털과의 합병후 비대해진 조직은 급변하는 시장환경을 제대로 따라가지 못해 숨을 헐떡이고 있다. 지난 97년 말 현재 3만2560여명이던 종업원은 디지털과 합병직후 두배가 넘는 7만660여명으로 늘어났다. 지난해 단행한 기업재편 계획대로라면 1만7400여명을 지난해 말까지 감원했어야 했지만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보고서에 따르면 1·4분기 말 현재 1만4200명밖에 정리하지 못했다. 말하자면 3000여명이 잉여인력으로 일하고 있는 셈이다.

 이처럼 중복되는 인프라와 고비용 구조는 급기야 2·4분기 손실로 이어졌다.

 이 기간 컴팩은 1·4분기 인터넷 관련업체들의 인수와 운영비용의 예상외 증가로 주당 15센트의 손실을 기록한 것으로 추정돼 투자가들의 우려를 낳고 있다. 매출도 지난해와 비교해 제자리 수준에 그칠 전망이다.

 컴팩은 지난 1·4분기에도 2억8000만달러(주당 16센트) 순익을 거뒀으나 당초 주식시장 분석가들의 예상치에 절반도 못미치는 수준이어서 실망을 안겨 줬었다.

 여기에 경영진들의 동요도 한몫을 한다. 지난 4월 그동안의 경영부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에커드 파이퍼 CEO가 물러난 것을 신호탄으로 지난달 엔터프라이즈사업본부를 총괄하던 존 로스 수석부사장까지 6명의 핵심임원이 회사를 떠났다.

 더구나 그동안 다른 지역에서의 불안한 행보에도 불구하고 견실한 성장세를 유지해 왔던 유럽 PC시장에서마저 최근 잇따라 적신호가 나타나고 있다.

 유럽 최대시장인 독일을 비롯해 프랑스, 영국 등에서의 판매가 급속히 둔화되는 데다 유로화의 약세로 수익구조에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고 있는 것이다. 지난 1월 유로화 출범 이후 유로에 대한 달러의 가치가 10% 정도 인상돼 그대로 수익구조에 반영됐다는 것이 유럽법인의 설명이다.

 게다가 최근 전격적으로 이루어진 독일 지멘스와 일본 후지쯔의 유럽 PC법인 통합은 컴팩에 커다란 도전이 되고 있다. 이들 두 기업은 「후지쯔 지멘스 컴퓨터」라는 통합법인을 설립, 오는 10월부터 본격적인 운영에 들어갈 계획으로 알려졌다.

 이들의 목표는 유럽 PC시장 2위, 세계 시장 3위 업체로 부상하는 것. 당연히 현재 유럽시장 선두를 유지하고 있는 컴팩에게는 여간 부담스런 존재가 아닌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지난 11년 동안 컴팩 유럽법인을 지금의 정상까지 이끌어 왔던 경영진마저 최근 회사를 떠나 컴팩의 처지를 더 난감하게 만들었다.

 앙드레아 바스라는 이 경영자의 사임은 표면상 최근 미국 본사 경영진들의 연이은 퇴진과 무관한 것으로 설명되고 있으나 일선에서 경영을 책임지던 수장들의 대거 물갈이라는 점에서 컴팩의 미래에 불안감을 더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일부에서는 현재 컴팩의 위기가 디지털이란 거구의 사냥감을 완전히 소화하지 못한 데서 기인한 것으로 풀이하기도 한다. PC업체였을 때의 기민했던 몸집이 너무 거대해져 운신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과 같이 소용돌이처럼 급변하는 정보기술(IT)시장에서는 민첩한 대응없이는 존재 자체가 위협받는 상황이다.

 따라서 컴팩은 우선 과감한 구조조정으로 효율적이고 탄력있는 조직운영에 힘을 쏟아야 한다는 지적이 어느때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컴팩은 이같은 필요성에서 지난달 대대적인 조직개편을 단행, 조직을 엔터프라이즈 솔루션 및 서비스그룹과 퍼스널 컴퓨터그룹, 컨슈머그룹의 3개로 통폐합했다. 새로운 CEO를 맞기 전에 조직을 정비해 놓아야 한다는 필요성에서였다.

 이에 발맞춰 유럽조직도 최근 경영진을 새로 교체하고 조직 재정비를 단행했다. 유럽에서 컴팩은 오는 9월부터 델 컴퓨터처럼 본격적인 직판체제로 나설 계획이다.

 그리고 컴퓨터분야에 역량을 집중시키고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인터넷 포털인 알타비스타의 경영권과 지분을 23억달러에 CMGI로 넘겼다.

 아무튼 컴팩 이사진은 이달 말까지 신임 CEO를 결정, 발표할 예정이다. 현재로선 누가 CEO가 되더라도 컴팩의 난맥상을 일시에 풀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의견이다.

 따라서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불안감을 갖는 투자자들을 안심시키고 군살제거로 탄력적인 몸매를 만드는 것이 컴팩 경영진들의 우선 과제라고 분석가들은 지적한다.

<구현지기자 hj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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