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방송의 위상 악화를 걱정하는 방송계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인천방송을 제외한 지역 민방들의 SBS 의존도가 IMF 체제 이후 계속 높아지고 있으며, 지역 MBC와 KBS 직할국 역시 자율적인 편성권을 확보하지 못한 채 키스테이션의 편성 및 기획에 많은 부분을 의존하고 있다.
지역방송들이 지역 밀착형 매체로 자리잡지 못하고 있다는 징후는 곳곳에서 포착되고 있다. 인천방송은 자사 방송권역인 서해상에서 발생한 남북한 교전 상황 속보를 제대로 보내지 못했고, 부산방송은 작년초 일본 주니치의 프로야구 경기 국내 중계권을 확보, 타방송사에 공급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지역 민방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방송광고요금 체계 때문에 포기하고 말았다.
방송계 전문가들은 지역에서 소화해야 할 정보와 프로그램 제작이 3대 키스테이션이 위치한 여의도쪽에서 이뤄지는 역류현상을 「정보의 사이펀 현상」이라고 빗대어 말한다.
지난 18일 부산방송 후원으로 방송학회가 주최한 「지역방송의 과제와 활성화 방안」 세미나에선 이같은 지역방송의 문제점과 불만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왔다.
우선 발제자로 나선 부산방송의 김석환 부장은 『우리나라 제2의 도시인 부산이 인근 경남 지역에 대한 정보거점 지구의 기능을 상실하고 있으며, 마산·창원·김해·진주·울산·양산·거제 등의 지역은 아예 부산을 경유하지 않고 중앙 네트워크와 직접적으로 연계돼 있다』며 지역 민방이 겪고 있는 고충을 털어놓았다.
김 부장은 지역 민방의 주요 수입원인 방송광고 시장도 매우 비관적으로 보고 있다. 『광고시장이 회복세를 보이면서 SBS와 MBC 등 중앙사들이 낮방송 시간을 연장하는 등 우월한 매체력을 이용해 광고를 저인망식으로 포획하고 있다』며 『국내 방송광고 시장은 동일한 수원을 이용하는 다단계 댐과 마찬가지로 상류의 댐이 만수를 이뤄야만 그 물이 하류로 흘러 내려온다』고 어려움을 얘기했다.
지난 2월말 활동을 종료한 방송개혁위원회는 1년의 유예기간을 두고는 있지만 지역 민방이 특정 방송사 제작물의 50% 이상을 편성하지 못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이 부분도 지역방송에 불리한 요인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다는 게 지역 민방측의 자체 분석이다.
김 부장은 『이같은 정부방침이 관철될 경우 지역 민방은 현재 프로그램 공급권료를 내지 않고 오히려 전파료를 받고 있는 SBS 프로그램만으로 편성할 수 없게 돼 필연적으로 외부에서 프로그램을 구매해야 하기 때문에 이중고에 시달리게 될 것』으로 내다봤다.
김 부장은 지역 민방들이 이같은 어려움을 타개하기 위해선 지역민방간 공동제작 여건 조성, 방송권역의 확대를 통한 방송광고요금의 조정, 편성분야 전문 인력의 양성 및 편성부문 강화 등 변화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매체력을 이용해 지역 ISP(Internet Service Provider) 사업에 진출하거나 광역권을 대상으로 문화적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다양한 변신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 특히 이종 매체간 전략적 제휴를 통해 멀티미디어 복합사로서 변신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발제자로 나선 부산MBC 최화웅 부국장도 지역 계열사의 고충을 주로 언급했다.
『19개 지역 MBC는 일본처럼 프로그램을 공동제작하는 권역 방송이나 독일의 연립방송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게 아니라 키스테이션에서 획일적으로 프로그램을 받아 재송신하는 중계소(릴레이스테이션)역할을 하는 데 불과하다』며 지역MBC의 위상 정립이 시급하다는 점을 역설했다. 98년 말 현재 지역 MBC의 정규사원은 총 1569명으로 계열사당 평균 83명 수준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같은 상황 때문에 지역MBC는 올봄 프로그램 개편을 기준으로 할 때 부산·대구·대전 MBC의 로컬 프로그램 편성비율은 13∼14%대에 그쳤고, 광주·울산·여수·포항은 11%대, 나머지는 10%안팎에 머물고 있다.
최 부국장은 『지역방송의 제작 여건을 획기적으로 개선하기 위해선 권역별 공동제작 시스템의 도입과 프로그램 교환의 제도화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권역내 지역MBC가 프로그램 제작을 공동 기획하고 제작인력·시설장비·예산을 공동 투입해 프로그램 공급자(Program Provider)로서의 역량을 키워 나가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방송발전기금도 경영이 어려운 지역방송사에는 차등적용하거나 폐지돼야 하며, 오히려 방송발전기금의 일정 부분을 지역방송 활성화에 지원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자꾸 중앙으로 치닫고 있는 국내 방송계의 현실을 개선하기 위해선 지역방송이 건전한 지역밀착형 매체로 확고하게 뿌리 내릴 수 있는 정책적인 대안이 시급히 마련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장길수기자 ksjang@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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