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가전업계, 에너지소비율 규제 기준 강화 "전전 긍긍"

 일본에서는 지난달 초 에너지소비효율을 규제하는 「에너지 사용의 합리화에 관한 법률」(에너지법)이 개정돼 가전 업계가 그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이번 개정에서는 에너지소비효율에 대한 규제가 더욱 엄격해져 각 제조업체들의 제품전략 수정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지난 79년 공장이나 기계의 에너지소비효율 개선을 목적으로 제정된 에너지법은 93년 개정에서 가전과 OA기기가 새롭게 규제 대상에 포함됐고, 이번 개정에서는 에너지소비효율 규제 기준이 매우 까다로워졌다.

 이번 법개정의 핵심은 제조업체가 지켜야 할 에너지소비효율 목표기준치가 한층 높아졌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목표기준치는 업계의 평균적 수준을 근거로 결정됐다. 그러나 이번에는 98년 가을 시점에서 에너지소비효율이 가장 높은 제품의 수치를 목표기준치로 정하고 있다. 동시에 제조업체별로 전제품의 에너지소비효율을 출하대수에 따라 가중(加重)평균해 그 결과가 목표기준치를 넘어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법개정으로 에어컨·냉장고·TV·VCR 등의 제조업체는 기기별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2003∼2005년 전제품의 에너지소비효율 가중평균치가 목표기준치를 넘도록 해야 한다.

 기준에 미달하는 업체는 그 이름이 공표되고, 벌금이 부과되는 벌칙을 받게 된다.

 지금까지 가전업계는 소비전력이 낮은 고가 기종과 소비전력이 높은 저가 기종으로 제품을 차별화해 판매하는 전략을 취해 왔고, 특히 고가의 상위 기종에 대해서는 최근 수년간 저소비전력화를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그러나 에너지소비효율을 비약적으로 향상시키는 기술은 아직 개발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중평균치를 높이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저가 기종의 에너지소비효율을 향상시키는 길밖에 없다. 그러나 여기에는 비용 부담이 따르게 된다. 소비전력을 낮추기 위해 고가 부품을 사용하기 때문이다.

 이번 법개정으로 가장 많은 영향을 받게 될 곳은 에어컨과 냉장고 제조업체다. 현재의 제품군이나 가격체계로는 목표기준치를 달성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에어컨의 경우는 법 개정이 미치는 영향이 특히 크다. 지금까지 에어컨업체들은 대부분 소비전력에 따라서 제품을 3개군으로 나누어 왔다. 고가이면서 저소비전력인 상위기종, 약간 소비전력이 많지만 가격이 적당한 중간기종, 소비전력보다는 가격을 중시한 하위기종 등이다. 사용자는 설치 장소나 사용빈도에 따라서 이 제품군에서 자신에 맞는 기종을 선택하게 된다.

 이런 에어컨업계가 에너지소비효율의 목표기준치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하위기종과 중간기종의 에너지소비효율을 상위기종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이렇게 하는 데는 상위기종 제조에 들어가는 정도의 비용이 따른다.

 에어컨의 에너지소비효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은 압축기, 제어회로, 열교환기, 모터 등의 효율이다. 이들 부품은 모두 효율이 높을수록 가격도 그만큼 상승하게 된다. 이 때문에 현재는 비용이 높은 상위기종에서만 고효율 부품을 탑재하고 있다.

 이와 관련, 히타치제작소는 「에어컨의 하위기종에 상위기종과 같은 부품을 채용할 경우 가격이 2배로 상승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이 때문에 에어컨 제조업계에서는 저가기종을 제품군에서 아예 빼버리거나 또는 출하대수를 대폭 줄이는 방안들이 적극 검토되고 있다.

 냉장고도 에어컨과 마찬가지로 목표기준치를 달성하는 데는 비용이 든다. 그러나 에어컨에서처럼 저가기종 판매를 중단하는 일은 곤란하다.

 냉장고의 경우 작을수록 가격이 낮다는 특성이 있는데, 저가인 소형 제품은 독신자를 중심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어 법 개정으로 비용이 다소 늘어난다고 그만둘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냉장고업계에서는 증가하는 제조비용을 판매가격에 전가하거나, 제조비용을 줄이는 방안들이 검토되고 있다.

 TV와 VCR 등 AV기기는 제조업체가 제품군을 거의 변경하지 않고도 법 개정에 따른 규제를 달성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소비전력을 억제하는 데 에어컨이나 냉장고에서만큼 비용이 늘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AV기기에서는 대기시의 소비전력이 가장 문제가 된다. 이 문제는 대기시와 동작시 각각 사용하는 두 개의 전원회로를 준비해 사용하지 않는 회로로 들어가는 전력을 차단하는 기술로 해결한다. 이 기술은 채용해도 비용이 그다지 상승하지 않는 데다 상위기종과 하위기종에서 똑같이 사용할 수 있다. 한편 에너지법의 개정은 가전업계에는 고민거리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사업 기회로도 활용되고 있다.

<신기성기자 ksshin@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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