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입선 다변화 조치 해제를 두달여 앞두고 우려됐던 일본 가전업체들의 공세가 벌써부터 가시화하고 있다.
일본 히타치가 용산전자랜드 안에 대규모 상설전시장을 개설하고 일본 가전업계의 대표주자격인 소니도 올해 한국에서의 판매목표를 지난해에 비해 50% 이상 늘려잡고 있으며 일본 AV전문업체인 JVC도 한국내 판매품목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 하반기 국내 가전시장에서는 연간 6조원에 육박하는 시장을 놓고 안방시장을 지키려는 국내 가전업체들과 그동안 수입선 다변화 조치에 묶여 한국시장 진출을 포기해야만 했던 일본 업체들 사이에서 자존심을 건 한판 승부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국내 가전업체들은 이미 일본산과 경쟁할 수 있는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기 때문에 수입시장이 완전 개방되더라도 커다란 타격은 없을 것으로 자신하고 있다.
이같은 국내 업계 관계자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그리 걱정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일본산 가전제품이 침투해 있는 세계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 보듯이 경쟁력이 약한 현지업체들은 거의가 도태라는 최악의 사태를 면치 못했다. 전세계 어디에서도 「메이드 인 재팬」이라는 상표를 부착한 제품이 가장 높은 시장점유율을 갖고 있다는 사실은 결코 간과할 일이 아닌 엄연한 현실이다.
특히 일본이 독보적인 기술을 갖고 있는 AV분야는 상대적으로 국내 업체들이 뒤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자신감이나 사용자들의 애국심만으로 무조건 일본산 제품을 이길 수 있다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밖에 없다.
일본 가전업체들이 한국진출의 첫 단계로 한국의 가전업체들이 가장 취약한 AV부문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것은 그들 스스로 충분한 승산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캠코더가 지난해말부터 수입이 자유화되면서 소니 본사 측이 한국에서 유일하게 삼성전자만이 생산하고 있는 캠코더가 가장 효율적인 공략대상이라는 판단 아래 대대적인 공세를 펼치고 있으며 이 결과 소니 제품의 판매가 급증해 소니의 한국지사가 추가로 물량을 주문했다는 소식이 들리고 있을 정도다.
여기에 중산층 이상의 국내 수요자 중 상당수가 일본산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다는 사실은 수입선 다변화 조치 해제로 일본산 제품에 대한 사회적인 거부감이 희석될 경우 선풍적인 인기를 모을 것이라는 예상도 가능케 해주고 있다.
실제 지난 97년에 미국산 소니 제품이 국내에 대량 유입되면서 일부 부유층을 중심으로 사재기 경쟁까지 벌어졌다는 사실은 이같은 예상이 결코 가상의 시나리오가 아님을 보여주는 사례다.
현재 국내 가전업체들이 일본산 제품과 가장 차별화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것은 낮은 가격전략과 영업망 및 서비스망의 구축이다.
그러나 일본 업체들 대부분이 중국이나 동남아에 대규모 생산거점을 확보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일본산 제품의 가격경쟁력이 국산에 비해 높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하는 잘못된 판단일 수 있다.
또 그동안 국내 업체들이 영업을 전개해 오면서 구축해 놓은 영업망과 서비스망은 당분간 일본 업체들의 공략을 효율적으로 막아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일본 업체들 스스로 이같은 취약점을 파악하고 갈수록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중견 가전업체들과 협력해 이들의 영업망과 서비스망을 이용하고 있다.
업체별로 자체적인 유통점을 확보하고 있다는 국내 가전산업의 특이한 유통구조로 인해 그동안 국산 제품만 취급해 오던 대리점들이 경기침체로 수요가 급감하면서 판매 활성화를 위해 오히려 이들 일본산 제품의 판매를 요청하고 있다는 소문마저 들려오고 있다.
국내 업체들이 일본 업체들과 차별화할 수 있다고 내세우는 여러 요인들이 이제는 상황변화로 국내 업체에 아무런 이점을 주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결국 국내 가전업체들이 일본 업체들과 경쟁에서 이길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소비자들에게 일본산 제품에 비해 더 많은 장점을 제공하는 일뿐이다. 시장경제의 기본적인 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정서에 맞는 기능을 개발, 부가가치를 높이고 이를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일본산 제품에 비해 국내 소비자들이 갖고 있는 다양한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제품 개발이라는 정면대응이 수입시장의 완전개방에 대비한 유일한 대책임을 국내 가전업체 스스로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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