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이 잡히자 그녀는 처음에는 움찔 놀라는 몸짓이었다. 그러나 손을 빼지는 않아서 나는 마음속으로 「휴」하고 안도의 숨을 쉬었다. 그러한 일은 자연스럽고 평범하게 이뤄질 수 있었지만 나는 왜 그렇게 힘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마도 힘들게 생각해서 힘들었을 것이다. 무슨 일이든 생각하는 관점에 따라 달라지게 마련이다.
그것은 평소에 가지고 있는 결벽증에 가까운 나의 성격 때문이기도 했지만, 그러한 모든 일이 서툴고 처음이라는 데서 오는 긴장 탓이었다. 도시락을 가져다준 여대생 다희와 잠깐 사귀었을 때 그녀가 적극적으로 대한 것에 반감을 가진 것은 아마 내가 그녀를 좋아하지 않아서일 것이다. 지금 송혜련을 좋아하는 그같은 심경이었다면, 그녀의 적극적인 태도도 매력으로 받아들여졌을 것이다. 이를테면, 만져 달라 안아 달라, 키스해 달라고 조른 것 말이다.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사랑이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에 묘미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받는 것은 즐거운 일이지만 떨림이 없다. 떨리고 긴장이 되고 숨막히는 두근거림은 주는 것에서 발생하기 때문이다. 송혜련도 나이가 어린 만큼 나에게 손이 잡히자 몹시 긴장하는 눈치였다. 손이 움직이지 않고 뻣뻣한 것을 보면 알 수 있었다. 그러나 시간이 조금 지나자 너무 간지러울 정도로 적응을 잘 해서 내 손을 만지작거렸다. 더러는 손가락으로 내 손바닥을 간질이기도 하고, 손가락으로 손가락을 꺾기도 하는 장난을 했다.
월미도에서 있었던 송혜련과의 첫 데이트에서 이야기를 많이 나눈 기억은 없다. 그러나 우리는 아주 많은 이야기를 한 그같은 느낌이 들었다. 주위의 풍경을 구경하면서 그냥 걷고, 가끔 시선이 마주치면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는 것으로도 우리는 충분했는지 모른다. 해가 지기 전에 우리는 서울로 돌아왔다. 그 첫번의 데이트는 우리의 만남을 일상화시켰다. 우리는 토요일 오후와 일요일은 거의 빠짐없이 제과점에서 만났다. 은행으로 가서 돈을 넣고 빼면서 그녀를 만나는 일은 하지 않았다. 평일에도 그녀를 만나기 위해 은행에 가는 일은 있지만, 전처럼 통장을 보이면서 태연한 척하는 가식은 없어졌다. 어떤 때는 평일 근무중에도 내가 은행에 나타나면 옆의 창구 직원에게 부탁을 하고 슬며시 빠져 나와 제과점에 가서 차를 마시기도 했다. 그것이 가능한지 알 수 없었으나, 그러다가 언제부터인지 그 일도 하지 못했다. 아마 근무중 이탈이 잦아지자 그녀의 상사로부터 핀잔을 들은 모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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