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버스를 타고 서울을 벗어났다. 인천의 월미도로 가서 바닷바람을 쐬기로 했던 것이다. 버스가 서울 시가지를 벗어나면서 모내기를 하는 논이 보였다. 못자리에 물을 대고 사람들이 한 줄로 서서 모를 심었다. 그들의 구부린 등에 봄햇살이 비쳤고, 들판은 끝없는 녹색으로 펼쳐졌다. 플라타너스 가로수의 잎이 아기의 손바닥만큼 커져서, 그것이 햇볕을 받아 반짝이는 것이 마치 방긋방긋 웃으면서 우리를 환영하는 듯했다. 버스가 흔들릴 때마다 옆에 앉아 있는 그녀의 포동포동한 팔이 내 어깨에 부딪혔다.
버스 안에는 젊은 남녀의 모습도 있었지만, 시골 아낙네들도 더러 섞여 있었다. 그 중에는 갓난아이를 안고 가는 어머니도 있었다. 아기가 울자 가슴을 풀어 젖을 먹였다. 그때 그 여자가 아야 하고 비명을 질러서 사람들이 돌아보았다. 그러나 다음 순간 버스 안의 사람들이 웃음을 터뜨렸다. 그녀가 다음 말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유, 아파. 제 애비를 닮아서 깨물기는….』
우리도 웃었다. 어떤 이유로든 웃는다는 것은 참으로 좋은 것이다. 우리는 별로 말을 안했지만, 그녀와 함께 있으면 무엇인가 푸근하고 가득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어땠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풍요한 느낌으로 가득했다. 옆에 있다는 사실로 가득 채워지는 것이었다. 창가에 앉은 그녀의 프로필이 보였다. 창밖의 햇볕 사이로 가로수 그림자와 빛이 그녀 프로필 위에서 일렁였다.
우리는 월미도에 내려서 바다 방파제 위를 걸었다. 바닷가에는 천막으로 둘러친 선술집이 있었고, 사람들은 그 안과 밖에서 음식을 먹었다. 목포 유달산 아래의 바닷가에 살았던 나는 바닷바람에 익숙한 편이었지만, 그곳에서 그녀와 함께 맞이한 바다는 색달랐다. 바닷바람이 달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그것은 내면에 용솟음치고 있는 청춘의 열기 때문일 것이다. 소금기와 비린내가 혼합돼 바닷바람은 그렇게 산뜻한 것은 못되는 데도, 그것이 달다고 느낀 것은 오로지 송혜련 때문이다. 그녀의 존재가 그것을 정화해서 나에게 보낸다고 생각했다.
바다를 바라보면서 난간에 나란히 섰다. 바람이 세차게 불자 그녀의 블라우스 깃이 퍼러럭 하면서 소리를 내고 떨었다. 그녀의 짧은 머리카락이 헝클어졌다. 나는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어 주고 싶었지만 앙증맞은 짓일 것 같아 참았다.
『춥지 않아요?』
내가 물었다.
『좋아예. 오래간만에 바닷바람을 쐬니까 참 좋네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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