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정보기술(IT)세계에서 최고경영자(CEO)는 기업의 흥망성쇠를 좌우하는 거의 절대적인 존재다. 더구나 그 기업이 컴퓨터나 통신, 인터넷 등 해당 분야를 선도하는 대표기업인 경우 CEO의 비전과 경영철학은 향후 전체 IT산업이 전개해 나갈 미래에도 엄청난 영향력을 미치게 된다. 따라서 이들이 어떠한 철학과 스타일로 기업을 이끌어 왔고 또 이끌어 갈지는 지대한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현재 IT업계에서 자타가 공인하는 성공적인 CEO들은 무엇보다 미래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과 과감한 추진력, 탁월한 리더십 등을 공통적인 덕목으로 갖추고 있다. 이같은 덕목이 해당기업을 세계 최고로 키워냈고 경쟁업체는 물론 IT업계 전체의 전개방향에도 힘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먼저 손꼽히는 인물은 두말할 것도 없이 세계 컴퓨터업계를 지배하고 있는 마이크로소프트(MS)의 빌 게이츠 회장이다. 하버드대를 중퇴하고 75년 폴 앨런, 스티브 발머 등과 함께 뉴멕시코 한구석에 조그마한 소프트웨어회사인 MS를 설립할 때만 해도 빌 게이츠가 미래의 컴퓨터업계를 좌지우지하는 거인으로 성공하리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다. 그러나 그는 마침내 세계 최고의 컴퓨터황제가 되었고 MS를 컴퓨터업계는 물론 인류의 운명까지 바꿔버린 인터넷세계에서조차 무소불위의 힘을 발휘하는 거대기업으로 키워 놓았다.
빌 게이츠는 탁월한 경영능력과 지칠 줄 모르는 사업확장욕으로 유명하다. 컴퓨터 운용체계(OS)에서 인터넷, 방송까지 장악하려는 그의 야심은 따라서 MS를 컴퓨터 왕국으로 만드는 동시에 왕국 밖에 수많은 적들을 만들어 놓기도 했다. 이 결과 반독점재판과 반MS진영의 견제, 소비자단체들의 끊임없는 반발 등으로 현재 곤경에 처해 있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컴퓨터로 인류의 미래를 이끌어 가겠다는 꿈이 결코 시들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세계 최대 컴퓨터업체인 IBM의 루이스 거스너 회장 역시 높이 평가받는 CEO로 빼놓을 수 없다. 그의 진가는 침몰해 가는 거함 IBM을 다시 일으켜 세운 탁월한 위기관리 능력에 있다. 그는 「거만한 IBM」을 「겸손한 IBM」으로 만들면서 기업이미지를 180도 바꿔 놓았고 고객의 니즈(needs)를 정확히 읽는 데 전략의 초점을 맞췄다. 그 결과 93년 취임 당시 적자투성이 회사를 3년만에 흑자기업으로 반전시켰고 현재까지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선두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것이다.
무명의 PC호환업체를 오늘날 세계 최대 PC업체로 키운 컴팩컴퓨터의 에커드 파이퍼 회장.
가격으로 승부를 걸겠다는 그의 전략은 그대로 맞아떨어져 경쟁업체보다 싸게 내놓은 제품이 날개돋친 듯 팔리기 시작하면서 컴팩을 94년 이후 줄곧 부동의 세계 PC시장 1위업체로 키워왔다.
파이퍼 회장은 PC업체로 만족하지 않고 여기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종합 IT업체로 성장한다는 야심 아래 97년 탠덤, 지난해 디지털 이퀴프먼트를 인수하는 등 본격적인 몸집불리기에 전념했다. 역시 성공적인 인수합병을 이끌어 낸 결과 컴팩을 현재 IBM, 휴렛패커드(HP)에 이어 세번째 IT반열에 올려 놓았다.
한편 MS저항세력의 대표주자로 주목받고 있는 선 마이크로시스템스의 스콧 맥닐리 회장도 IT시장 판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킨 핵심인물로 꼽히는 CEO다. 그는 일찍이 다른 업체들이 개별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판매에 정신을 쏟고 있을 때 「네트워크가 곧 컴퓨터」라는 슬로건을 내세우면서 컴퓨터의 네트워크화에 남다른 열정을 보여 왔다. 그리고 이를 가능케 한 결정판으로 지난 95년 개발한 인터넷 프로그래밍언어 「자바」를 선보였다. 맥닐리 회장은 현재 MS의 끝없는 정복욕을 저지시킬 유력한 차세대 기수로 급부상중이다.
정보통신분야에서는 미국 AT&T의 CEO 마이클 암스트롱이 대표적인 인물. 그는 80년대 초 AT&T의 전화시장이 7개의 지역전화사업자에게 분할되고 96년에 다시 통신장비와 컴퓨터 부문이 루슨트, NCR 등으로 재분열되면서 쇠락해져 가던 AT&T를 오늘날 다시 세계 최강의 통신사업자로 다시 일궈낸 주인공이다. 지난해 7월에는 브리티시 텔레컴(BT)과 연간 매출액 100억달러 규모의 국제 통신합작사 설립을 성사시켰고 12월에는 IBM의 글로벌 네트워크 인수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다.
최근 들어 인터넷 사업에도 적극 나서고 있는 그는 AT&T를 미국의 장거리전화 사업자라는 전통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나 세계적인 통신사업자로 거듭나게 만드는데 주도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미국 최대 PC통신업체인 아메리카 온라인(AOL)의 CEO인 스티브 케이스는 항상 남들이 미처 생각지 못한 분야에서 혁신적인 시장 전략을 구사, 사업에 성공한 CEO로 유명하다.
그는 지난 85년 AOL을 설립할 당시 복잡한 명령어와 텍스트 중심의 PC통신을 멀티미디어 환경과 사용자 중심의 GUI환경으로 전환시켜 PC통신에 일대 혁명을 몰고 왔다.
또한 90년대 들어서 노도와 같은 인터넷 열풍을 기반으로 인터넷환경의 PC통신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남들보다 한발 앞선 그의 시장전략이 오늘날 AOL을 인터넷의 최강자로 만든 것이다.
루슨트의 리처드 매킨 CEO는 향후 인터넷과 맞물려 데이터 기반의 통신이 폭발적으로 성장할 것으로 간파, 네트워크시장에 선도적으로 진출했다는 점에서 최근 들어서야 이 분야에 나서고 있는 경쟁사들과 비교되는 경영능력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그의 기본적인 경영전략은 인수합병(M&A)을 통한 경쟁력 강화. 네트워크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새로운 업체를 설립하는 것보다 관련 업체를 인수하는 것이 훨씬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방법이라 생각한 그는 2년 전부터 그같은 전략을 집중적으로 추진해 왔다.
이에 따라 지난 2년간 유리시스템스·랜넷·매스미디어·어센드 등 무려 11개의 네트워크업체를 성공적으로 인수했고 이 결과 현재 루슨트를 시스코, 노텔 네트웍스와 더불어 네트워크업계의 빅3로 키워 놓은 것이다.
일본 IT업계에도 신화적인 CEO로 세계 언론으로부터 집중적인 조명을 받는 인물들이 적지 않다.
92년 이후 일본의 극심한 경기침체 속에서도 95년 3조7000억엔 매출과 1000억엔의 적자기업을 불과 3년만에 6조7000억엔의 매출과 5200억엔의 흑자기업으로 변신시킨 소니의 이데 노부유키(井出伸之) 사장(62). 세계 언론은 소니의 재건을 말할 때 이데 사장의 탁월한 리더십을 빼놓지 않는다.
95년 오가 노리오(大賀典雄) 당시 사장이 층층이 쌓인 선임임원들을 제치고 이데 상무를 자신의 후임으로 발탁한 사건을 두고 호사가들 사이에서 오가 현 소니 회장의 최대업적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이데 사장이 보여 준 경영수완은 놀랄 정도로 뛰어난 것이었다. 이데 사장은 100명이 넘는 사원들에게 자신보다 많은 연봉을 준 합리성과 「전임 일본사장들의 경영방침을 참고하지 않는다」고 확실히 밝히는 초일본적인 경영철학으로도 유명하다.
MS의 빌 게이츠나 인텔의 앤드루 그로브 회장에 버금가는 명성을 얻고 있는 재일교포 3세 사업가인 소프트뱅크의 손정의(孫正義 43세, 일본명 마사요시 손). 일본내 3대 부호로 우뚝 선 그는 미국 버클리대서 경제학을 공부하고 일본으로 돌아온 지난 81년 24세의 나이에 맨손으로 소프트웨어 유통회사인 소프트뱅크를 설립해 오늘날 세계적인 초대형 기업으로 일궈냈다.
지난 96년 일본기자단체가 선정한 「21세기 일본을 이끌 경영인 1위」를 차지하기도 했던 손 회장은 그가 이끄는 소프트뱅크를 통해 사이버캐시(전자화폐), J스카이B(방송), 컴덱스(전시회), 야후(인터넷), 지프데이비스(출판) 등 각 분야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벤처기업들을 인수, 「디지털 콘텐츠의 확보」와 「미래시장 선점」이라는 두가지 목표달성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화투와 트럼프를 제조하던 일개 중소기업 닌텐도가 일약 세계 게임기시장의 핵심기업으로 급부상한 중심에는 지난 50년간 항상 같은 자리를 지켜온 야마우치 히로시(山內弘) 사장(71)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기업」이라는 경영철학이 있었다.
야마우치 사장은 지난 49년 가루타(카드놀이의 일종) 제조판매회사의 사장으로 취임한 이래 83년 가정용 게임기인 「패밀리컴퓨터(패미컴)」를 시판해 일대 게임기 붐을 일으키며 「닌텐도신화」의 초석을 다졌다.이후 닌텐도64로 이어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야마우치씨는 시행착오를 거듭하고 위기에 직면하면서도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일을 해야 한다』는 일관된 신념으로 위기를 기회로 반전시키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여 주었다.
<국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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