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유골을 뿌리면 해외로 가겠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우리는 형의 유골을 뿌렸다. 그때 모습이 보이지 않던 아버지가 나타났다. 한낮이었으나 아버지는 술이 취해서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었다. 아버지는 갑자기 늙어버린 것 같이 초췌했다. 술에 취한 아버지가 보이자 나는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아들의 죽음 앞에서 아버지의 모습은 달라보였다. 술만 취하면 그렇게 사기충천하던 기개가 꺾여 있었다. 아버지로서도 어떤 운명 앞에서는 저항할 수 없었던 것이다.
『아버님도 유골을 뿌리시죠.』
한쪽에 우두커니 서서 지켜보는 아버지에게 형의 친구 한 명이 다가가 말했다. 그러자 아버지가 걸어와서 통에 들어 있는 유골을 한줌 쥐고 바다에 던졌다.
『개새끼, 내가 그렇게 주의를 주었는데도.』
아버지는 중얼거렸다. 나는 처음으로 아버지의 눈에서 소리없이 흘러내리는 눈물을 보았다. 그때 아버지가 우는 걸 본 것은 나로서는 처음이면서 마지막이었다. 아버지는 어떠한 경우에도 눈물을 보이지 않았다. 끝도 없이 욕설을 퍼부으면서 주사(酒邪)하는 것만이 아버지가 보여주는 전부였다. 어렸을 때부터 그렇게 인식되어 왔기 때문에 아버지가 운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아버지는 화를 내는 사람이어서 우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아들의 죽음 앞에서 우는 것은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내가 신기하게 생각하고 놀란 것은 그러한 고정관념 때문이었는지 모른다.
바다에 유해를 뿌리고 있는 동안에 배가 불룩한 형수는 견디어 내었다. 견디어 낸 것은 울지 않았다는 말이다. 생각보다는 형수가 강인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그후에 정읍에 있는 시골집에 가서 아기를 분만했다.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기를 친정에 맡기고 직장생활을 한다는 말을 들었지만 한동안 어떻게 사는지 알 수 없었다. 세월이 얼마가 지나도록 그녀는 개가를 하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실제 어떻게 사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형의 죽음은 나에게도 충격을 안겨주었다. 장례를 마치고 돌아오는 야간열차 안에서 형과 영원히 이별했다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제야 슬픔이 밀려와서 나는 눈물이 쏟아졌다. 사람들이 보는 듯해서 나는 연결통로로 나가서 소리내어 울었다. 떨거덕거리는 레일소리와 바람소리가 나의 흐느낌을 삼켜주었다. 그러나 나는 형을 잃은 것이 사실이고, 그것은 돌이킬 수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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