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연말에 두편의 인상적인 음악프로가 TV에 방영된 적이 있다. 「파바로티와 친구들 98」과 「빈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이다.
이 중 「파바로티와 친구들 98」 공연에선 예전과는 파격적으로 달라진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파바로티라는 거장의 그늘에 가려 감초격으로만 등장하던 대중가수의 위상이 어느새 동등 내지 전도되어 있었다. 어떤 가수는 파바로티를 압도하는 열창으로 대중의 환호와 인기를 얻기도 했다.
또 플라시도 도밍고와 세 명의 대중가수가 함께 꾸민 「빈 크리스마스 캐럴」 공연 역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격식을 갖춘 정장차림에 정통 발성법을 구사하는 도밍고에 비해 대중가수들은 훨씬 다채로운 옷차림, 개성적인 헤어스타일에다 음색마저 갈라져 거북할 것 같은데도 이상스레 관객들은 이 부조화·불협화음에 더 큰 공감과 열광을 보냈다.
이 두 음악공연은 감성시대의 재능이 시간을 뛰어넘어 경륜을 앞지르는 사례라 할 수 있다. 이러한 풍조는 이미 새로운 밀레니엄을 맞이하면서 국가사회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다.
개방화 속도가 빨라지고 지적·문화적 교류가 잦다보니 어느새 고집스레 지켜오던 전통관습이나 질서들이 무너져 내리면서 새로운 조화의 길을 모색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는 네트워크사회의 자연스런 생리라 할 수 있다. 산업사회의 권위주의적 분업화 원리가 막을 내리게 되자 과거 담을 쌓고 서로를 백안시하던 모든 장르, 모든 분야, 심지어 개성이 다른 모든 사람들끼리도 화해의 손짓을 하며 공유·협력의 유연한 사회를 열어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흐름은 우리사회에서도 어김없이 번져가고 있다. 지식사회로의 변신이 강조되고 사회풍속이 달라지며 멀티미디어산업 등 문화 콘텐츠산업이 새로운 산업으로 떠오르고 있다.
인터넷 보급이 늘면서 수많은 수요자의 요구가 천정부지로 늘어나 공급자의 안목과 자질을 뛰어넘는 기현상도 늘고 있다. 정보산업 분야는 물론 정치·사회·교육·과학 분야에서도 경직된 권위 속에 안주해 있던 공급부문이 수요자를 뒤쫓아가느라 헐떡이는 역현상이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근로환경에서도 이런 유사한 변화의 돌풍이 어김없이 일어나고 있다. 근래 들어 어느 직장치고 인력감축으로 홍역을 치르지 않는 곳이 없다. 많게는 50%가 넘는 대단위 감원으로 조직의 풍속이 달라져버린 곳도 있다. 여기서 공통적인 현상으로는 고령자·사무직·무능력자들이 퇴출대상 우선순위를 지키고 있는 일이다.
그러나 그 다음 단계에서 살아남는 자를 보면 신통하게도 정보사회의 보편적 특성에 들어맞는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사물을 보는 시각이 진취적·긍정적이면서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들이 잔류족으로 선택되고 있는 것이다. 산전수전 다 겪은 풍부한 경륜을 앞세우는 고참세대들이나 고집스런 원칙주의자보다는 순발력 있고 열정적인 중견그룹이 더 환영을 받고 있다.
유연한 감성문화가 자리잡고 독불장군보다는 팀워크를 생명으로 하는 네트워크 사회의 근로관습이 자리잡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의 사회는 문화경쟁력에서 선후진국이 판가름난다. 경쟁력 제고란 법을 바꾸고 투자를 늘리며 기술인력을 양성한다고 해서 저절로 되지 않는다. 새로운 사회에 걸맞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수용할 수 있는 체질부터 기르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
다채로운 감성의 분출 위에 중후한 경륜이 자유분방하게 손을 잡는 공유문화가 꽃피울 때 비로소 우리사회는 세련된 고품질사회에 들어설 수 있을 것이다.
<백석기 정보통신교육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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