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담동 주택가에 양철로 만든 집이 한 채 있다. 양철 담을 쭉 따라가다 양철 대문, 양철 문을 열고 들어서면 또 양철 블라인드를 내린 작업실 창문이 보이는, 이름 그대로 「양철집」이다. 이곳에 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를 제작중인 영상 벤처업체 「필름앤웍스 양철집」이 둥지를 틀고 있다.
『왜 이름이 양철집이냐고요? 처음 이사왔을 때 건물 외벽이 부실해 보이기에 손을 좀 봤습니다. 철골 프레임 위에 값싸고 튼튼한 양철을 덧붙인 거죠.』
양철을 조그맣게 잘라 만든 명함을 내밀면서 김문생 감독(40)은 이렇게 말문을 연다.
필름앤웍스 양철집은 CF부터 실사영화, 애니메이션, 무대디자인까지 새로운 영상을 만들어내는 일이라면 뭐든지 자신 있다고 말하는 영상 벤처업체. 현재 본가(本家)인 양철집에서는 주로 TV CF팀이, 서초동 영상벤처빌딩에는 영화제작팀이, 양철집 맞은 편의 아담한 빌라엔 아트 디렉터들이 모여 있다. 김 감독은 요즘 이 세 곳을 오가며 극장용 장편애니메이션 「원더풀데이즈」와 씨름하고 있다. 광고업계에선 「특수효과 CF의 마술사」로 불리는 베테랑 감독이지만 이 작품이 그에겐 충무로 데뷔작이다.
「원더풀데이즈」는 기획단계에서 이미 한국멀티미디어컨텐트진흥센터(현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로부터 2억원, 영화진흥공사에서 판권담보 융자로 3억원을 지원받아 화제를 뿌렸던 만화영화. 게다가 공각기동대·아키라·코난 같은 일본 애니메이션 히트작의 동화, 원화를 그렸던 셀 애니메이션계의 간판업체 DR무비가 제작파트너로 가세하면서 더욱 업계의 눈이 쏠리고 있다. 김 감독은 「원더풀데이즈」가 관객들에게 전혀 새로운 영상체험이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전 최고가 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유일해지는 수 밖에 없다」고 믿고 있죠. 그래서 원더풀데이즈를 그 어떤 작품과도 닮지 않은 작품으로 만들 생각입니다』고 그는 솔직한 욕심을 털어놓는다.
필름앤웍스사는 우선 2D와 3D, 미니어처를 결합시킨 독특한 형식으로 차별화를 선언했다. 2D만 가지고는 단조롭고 그렇다고 풀 디지털 3D는 지나치게 차갑고 기계적인 느낌을 주기 때문에 만화영화의 상상력을 가로막는다는 게 이 같은 방식을 선택한 이유다. 그래서 주인공 캐릭터는 2D로, 무기나 오토바이, 비행기 같은 소품은 디지털 3D로, 그리고 배경은 실사영화처럼 모션 컨트롤과 매트 페인팅을 통한 미니어처로 촬영을 진행 중이다.
얼마 전 제작발표회에서 공개됐던 원더풀데이즈의 시나리오는 언뜻 환경오염을 주제로 한 평범한 이야기처럼 보인다. 21세기 어느날, 남태평양의 한 섬으로 이주해 간 아시아의 젊은이들이 낯선 땅에서 새로운 고향을 만들어 나가며 겪는 우정과 대립, 그리고 사랑이 이 작품의 기둥줄거리. 하지만 환경문제는 영화의 배경으로 존재할 뿐이라는 게 김 감독의 설명이다. 알고 보면 영화의 출발점은 「만약 종말이 온다면 어떤 죽음을 택할 것인가」 하는 철학적 물음이다.
『오염된 지구에서 살아가던 수하·재희·시몬 세 주인공은 모두 종말의 순간이 온다면 어떤 죽음을 선택할 것인가를 놓고 고민합니다. 그리고 죽음을 넘어서면 비로소 삶이 아름다워진다는 것을 깨닫게 되죠. 죽은 자의 눈으로 볼 때 눈물이 나도록 아름다운 세상, 그날이 바로 원더풀 데이즈입니다.』
극영화도 담기 힘든 죽음의 문제를 애니메이션으로 표현한다는 게 과연 관객들의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까. 한국영화계가 관객들의 입맛에 맞춰 공장에서 찍어낸 듯 비슷비슷한 로맨틱 코미디들만을 쏟아내는 요즘 진지한 애니메이션이란 너무 위험한 발상이 아닐까. 하지만 원더풀데이즈에 참여한 많은 스텝들은 김 감독이 이처럼 어려운 주제를 세련되고 감각적인 영상 속에 자연스럽게 녹여낼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홍대 시각디자인학과를 거쳐 대학원에서 무대디자인을 전공한 후 15년간 광고를 만들어오면서 그는 초현실의 세계를 눈앞의 영상으로 풀어내는 CF감독으로 불려왔다. 박중훈이 기침을 하는 장면에 클레이메이션이 코믹하게 합쳐지는 하벤F를 비롯해 치토스, 울트라녹스, 현대자동차 씽씽이, 코카콜라 설날편 등이 모두 그의 작품들.
과연 원더풀데이즈가 국산 애니메이션의 새로운 장을 열 수 있을 것인지 내년으로 예정된 개봉까지 기다리기 지루한 관객이라면 가상공간에서도 양철집(Tin House)이라는 이름으로 열려있는 필름앤웍스의 홈페이지(http://www.tinhouse.co.kr)에서 제작과정을 지켜볼 수 있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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