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본고장인 미국의 자동차업계가 인터넷을 매개로 조달·생산·판매부문에서 혁신을 시도하고 있다.
변혁의 기반은 다름 아닌 지난 10월부터 가동에 들어간 업계 공동의 전자정보네트워크인 ANX(Automotive Network eXchange)시스템이다.
ANX는 미국의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 및 판매점, 물류 및 자동차 보험업자 등을 인터넷을 매개로 단일 정보망을 구축한 일종의 인터넷상의 광속거래(CALS) 또는 전자문서교환(EDI)시스템이다.
미국의 완성차업체와 부품업체·판매점들은 ANX 개통으로 제품의 설계데이터·부품재고·부품발주정보·출하일정·대금지불 및 기타 기업정보 등 자동차 개발에서부터 제조·판매 등에 관한 방대한 정보에 이르기까지 실시간으로 공유하게 됐다.
현재 가동중인 ANX에는 미국 빅3를 중심으로 한 북미 완성차업체와 1천개사 이상의 부품업체가 참여하고 있다.
오는 2000년까지 북미 완성차업체는 물론 5천여개의 부품업체와 4만개사에 달하는 판매점·물류·보험업자 등을 연결시킨다는 계획이다.
미 자동차업계가 이같은 통합정보 기반을 구축한 데는 엄청난 야심이 깔려 있다.
일본 자동차업계에 잠식당한 시장을 되찾는 한편 한국 등 신흥 자동차 국가의 저가공세로부터 유효적절하게 대응하겠다는 전략이다.
그동안 미국 자동차업계는 폐쇄망인 EDI시스템을 이용해 부품업체와 수발주정보를 주고받아왔다.
이 시스템은 부품업체가 거래하는 모든 완성차업체와 개별적으로 전용선을 구축해야만 하는 단점이 있었고 정보 종류에 따라 각기 다른 전용선을 구축해야 하는 불편함에다 낭비적인 요소가 많았다. 결국 경쟁력을 잃어버린 상태였다. 미 자동차업계는 그동안 생산기반을 받쳐온 이같은 기존 시스템으로는 더 이상 세계시장 재탈환이라는 야심을 실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뿐만 아니라 경쟁기업간 정보를 공유하고 부품을 표준화하는 등 스스로 변화하지 않고 이대로 가다가는 공멸하고 말 것이라는 데 인식을 같이 한 것이다.
이에 따라 업계는 자동차 관련기업이면 누구나 적은 비용으로 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정보기반 구축에 눈을 돌리게 된 것이고 그 결과가 ANX로 구현된 것이다.
ANX는 이미 보편화돼 있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하면서도 가상 전용선망(VPN) 개념에 기초한 「IPSec」이라는 고유의 인터넷 암호 및 인증기술을 적용해 정보교환의 안전성 및 신뢰성을 높여 보다 손쉬운 정보공유를 실현할 수 있게 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했기 때문에 업체간 정보공유 비용을 크게 줄여줄 뿐만 아니라 정보이용의 효율성을 높여주는 장점이 있다.
또 부품개발 및 조달리드타임을 단축하는 것은 물론 재고 및 결품률 감축, 반기지연 최소화, 신차 개발비용 및 기간 단축 등 제품의 개발 및 생산·판매 등 전과정에서 비용을 감축하고 효율성을 높여 경쟁력을 획기적으로 개선할 것으로 기대된다.
ANX는 이같은 특징들로 인해 앞으로 세계 자동차업계의 글로벌 전략의 핵심변수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러한 예상은 유럽 자동차업계의 움직임에서 감지할 수 있다. ANX가 출범하면서 유럽 자동차업계가 여기에 가세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만약 유럽 자동차업계가 ANX에 참여할 경우 ANX는 앞으로 자동차업계의 세계적 표준 네트워크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다.
만약 이렇게 된다면 ANX에 참여하지 못하는 완성차업체는 글로벌 소싱이 불가능하게 되고 자동차 부품업체는 해외업체에 납품이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같은 자동차업계의 움직임은 자동차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국내 자동차업계도 공동의 정보통신기반 구축이 필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자동차공업협회가 중심이 돼 전자정보네트워크 구축을 목표로 「오토피아」사업을 내년부터 2004년까지 1천여억원을 들여 단계적으로 추진한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자동차업계는 현대가 기아와 아시아자동차를 인수한 데 이어 쌍용자동차를 인수합병한 대우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하려 하는 등 구조조정을 통한 판도변화가 한창 진행중이어서 이같은 계획이 차질없이 진행될지는 현재로서는 미지수다.
다만 우리가 기대를 거는 것은 국내 자동차산업이 현대와 대우의 이원화체제로 가게 될 경우 자동차업종의 CALS 기반구축은 오히려 손쉬워질 수도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정보기술을 활용한 정보기반 구축 수준이 양사가 거의 비슷한데다 경영혁신(BPR:기업업무 재구축) 과정을 거치지 않은 상태여서 적은 비용으로 첨단의 정보기술을 동원한 CALS 기반 구축은 선진국 자동차업계보다 앞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한다.
<구근우기자 kwkoo@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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