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오후, 이화여자대학교 교육문화회관의 한 강당. 객석을 메운 젊은이들의 표정은 진지함과 열기로 넘쳤다. 이곳에선 이대 전문직업개발원 주최로 「98 시민단체 프로젝트」라는 언뜻 듣기에 생경한 이름의 발표회가 열리고 있었다.
이 행사의 주인공들은 대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웹 프로모터 예비생들이다. 웹 프로모터(Web Promoter)란 정보사회가 만들어낸 신종직업군 중 하나. 정보의 바다 인터넷에서 원하는 정보를 검색해 주고, 첨단 멀티미디어기법을 동원해 개성있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주는 게 웹프로모터의 역할이다.
또 네티즌들의 눈길을 끌 수 있도록 유용한 콘텐츠들을 업데이트시키고 홈페이지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는 사이버마케팅 전략을 구사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결국 정보검색사부터 홈페이지 디자이너, 그리고 인터넷 컨설턴트 등 1인 다역을 해낼 수 있는 정보도우미가 되는 셈.
그렇다고 발표자로 나선 사람들이 모두 컴퓨터 관련학과 졸업생일 거라고 짐작한다면 오산이다. 사실 이들은 대학시절의 전공도 컴퓨터와 무관할 뿐 아니라 웹프로모터가 첫번째 직업도 아니다. 알고 보면 출판계부터 그래픽업계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경험을 쌓다가 하루 아침에 일터를 잃게 된 IMF형 실업자들. 지난 8월 이대 전문직업개발원 웹 프로모터 1기생으로 등록해 교육과정을 마치고 오는 18일 수료식을 앞두고 있다. 이들이 지난 4개월간 갈고 닦은 실력을 보여주기 위한 자리.
5개 조로 나눈 28명의 예비 웹프로모터들은 조별로 공동제작한 홈페이지를 프레젠테이션하고 심사위원들로부터 그 결과를 평가받았다. 시민단체 프로젝트라는 이름이 붙게 된 이유는 출품작들이 행사가 끝난 후 시민단체들에게 무료로 기증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우리마당」 「열린사회 시민연합」 「이천 YMCA」 「한국휴먼네트워크」 그리고 「광명 YMCA」 등 모두 자체 인력으로 홈페이지를 구축하기 어려운 시민단체들을 위한 홈페이지였던 것.
이날 심사위원들이 뽑은 최우수작은 열린사회시민연합팀의 홈페이지. 삶의 질을 향상시키고 사람을 존중하는 공동체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시민단체의 투명하고 밝은 이미지를 잘 표현했다는 심사평을 들었다. 방명록에 글을 올릴 때 경쾌한 음악소리가 흘러나오게 한 아이디어도 후한 점수를 받았다.
우수상은 박빙의 점수차로 광명 YMCA를 따돌린 우리마당에게 돌아갔다. 이 팀은 우리마당이 전통문화를 되살려 더불어 함께 사는 건강한 터전을 만들어 가기 위해 결성된 문화운동 단체라는 점에서 착안해 여백의 미와 전통 문양 그리고 색동색을 잘 조화시켰다.
하지만 아깝게 탈락한 팀들도 서운해 하기보다 들뜬 표정으로 행사를 마쳤다. 이날은 경합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이들이 웹프로모터로 첫 발을 내딛기에 앞서 치르는 일종의 신고식이었기 때문이다. 웹프로모터의 비전을 믿고 출판분야에서 전직을 결심했다는 한 발표자는 『4개월 동안 2백60시간의 강의를 들어야 했던 강행군이었다』면서 『앞으로 프리랜서 웹프로모터로서 일할 자신이 있다』고 말했다.
이들을 지도한 이대 전문직업개발원 유명희 주임교수는 『이번 수료생들이 하루빨리 전문 웹프로모터로 당당하게 설 수 있도록 좀더 적극적인 지원책이 필요하다』며 특히 홈페이지를 자체적으로 구축할 인력이 없는 정부 공공기관이나 시민단체 그리고 중소기업체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무료로 홈페이지를 갖는 행운을 누리게 된 시민단체들 역시 『웹프로모터가 취업대란 시대를 맞아 바늘귀 취업문을 뚫지 못한 예비졸업생이나 실직자들을 위한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입을 모았다.
<이선기기자 sk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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