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진컴퓨터랜드와 대우통신은 기본적으로는 각각 유통업체와 제조업체의 관계다. 그러나 대우통신과 세진컴퓨터랜드는 매출과 제품 구매 등에서 긴밀한 의존관계를 맺기 시작하면서 두 회사의 관계는 특별하게 발전했다.
대리점과 제조업체의 단순한 관계였던 세진컴퓨터랜드와 대우통신의 밀착관계는 삼성전자·삼보컴퓨터 등 PC시장 선발업체에 비해 자체 유통망이 취약했던 대우통신이 세진을 통한 매출을 늘리면서부터 시작됐다.
전국적인 PC 유통망의 필요성을 느낀 대우통신은 경영상 어려움을 겪던 세진컴퓨터랜드의 지분을 인수하면서 제조업체와 자사제품을 판매해주는 유통점관계를 공생관계로 발전시켰다.
현재 세진컴퓨터랜드의 지분은 한상수 전사장이 49%를 갖고 있으며 이군희 현사장을 포함한 임원진과 개인투자가가 49%, 나머지 2%를 변호사가 보유하고 있어 표면적으로는 대우통신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세진컴퓨터랜드 임원의 대부분이 대우통신 출신인데다 제품 구매와 매출에서 아직도 의존도가 높다는 점에서 대우통신과 세진컴퓨터랜드의 관계는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세진컴퓨터랜드의 향방은 대우통신이 앞으로 어떤 길을 걸어갈 것이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그룹에서 독립하는 대우통신이 앞으로 갈길은 두 가지 정도로 예상된다. 하나는 통신부문과 컴퓨터 부문을 분리 독립시켜 슬림화한 구조로 경쟁력을 높여가는 것이다. 이 경우 대우통신의 전체적인 외형은 줄어들더라도 컴퓨터부문은 PC 전문업체로 독립해 세진컴퓨터랜드를 주 유통망으로 활용하며 현재와 비슷한 수준의 관계를 유지하게 될 수도 있다.
또 다른 한 방향은 대우통신이 현 체제를 유지하면서 외자유치 등을 통해 자본구조를 개선하고 통신과 컴퓨터부문을 계속 유지해가는 것이다. 현재 대우통신에서는 후자의 경우에 더 높은 가능성을 두고 있다. 이 경우에도 세진은 지금과 같은 형태의 대우통신 유통망으로 남게 된다.
상황변화에 관계없이 세진컴퓨터랜드와 대우통신의 관계가 지금처럼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세진과의 거래에 의해 발생한 외상매출·채무 등의 금융관계를 쉽게 해소할 수 없는 수준에 달해 있는데다 PC사업을 포기하지 않는 한 연간 PC 매출의 20% 이상을 담당하는 세진컴퓨터랜드를 포기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대우통신과 세진컴퓨터랜드의 미래상은 앞서 구조조정을 실시했던 현대전자를 하나의 모델로 들 수 있다. 현대전자에서 분리해나온 멀티캡과 티존코리아가 표면상 독립법인으로 활동하고 있지만 현대그룹의 영향권에 있듯이 대우통신은 대우그룹에, 세진컴퓨터랜드는 대우통신에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보인다.
한가지 주목할 만한 점은 세진컴퓨터랜드가 유통을 전문으로 하는 독립법인으로 자립기반을 구축하고 있다는 점이다. 올초 실시한 명예퇴직 등 구조조정을 시작으로 경영개선 작업을 강도높게 추진하고 있는데다 PC 구매선도 자체 공급선을 포함해 삼보컴퓨터·LG IBM 등으로 다양화하고 있다.
세진컴퓨터랜드의 출자회사인 서비스뱅크는 세진컴퓨터랜드와 조금 경우가 다르다. 이 회사는 컴퓨터 보급이 확대되며 유지보수 분야도 안정된 시장을 형성, 이르면 내년에 손익분기점을 넘기며 자립경영 기반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따라서 상황변화에 따라 별도의 대응방안을 마련하지 않아도 될 만큼 운신의 폭은 넓다. 다만 이 회사가 세진컴퓨터랜드의 출자회사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대우통신의 직간접적인 영향권에 있다는 점은 배제하기 어렵다.
<함종렬기자 jyham@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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