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쿼터제" 무엇이 문제인가

 한미 투자협정 실무협상과정에서 돌출된 「스크린쿼터(한국영화의무상영일)제 폐지 및 축소」 문제가 사회 전반의 관심사로 확대되는 가운데, 영화계는 농성과 가두행진을 벌이는 등 결사항전의 자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계가 그토록 절박하게 스크린쿼터 수성의지를 불태우는 이유는 무엇인가.

 스크린쿼터 폐지는 일견 다양한 영화가 장벽없이 소개돼 국민의 문화향유권이 증대되고, 시장경제논리에 따른 완전 자유경쟁체제가 확립돼 오히려 국산영화의 자생력이 배양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일 수 있다. 스크린쿼터 수성의지는 「밥줄」이 끊길 것을 우려하는 영화인들의 아집일 뿐, 개방으로 대변되는 최근의 시대조류에 반하는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미국과 한국의 영화제작 및 배급 환경, 제작규모의 차이 등을 감안하면 스크린쿼터의 경제·문화적 가치는 분명해진다고 말한다.

 최근의 한국영화 1편당 평균 제작비는 10억∼15억원. 때론 20억원 이상이 투입되는 등 3년여 전에 비해 규모가 30∼40% 이상 커지고 있다. 연간 최대 60편의 한국영화가 제작되는 점을 감안하면 약 6백억∼9백억원이 영화제작에 투입되고 있다는 것.

 그 나름대로 한국영화의 토양이 비옥해져 질이 향상되고 있다는 증거이기는 하지만 이같은 자생력이 미국영화의 폭격을 방어할 만한 우산이 되지는 못한다. 세계시장을 겨냥하는 미국영화의 제작비는 통상 1억∼2억달러 수준. 1년간 제작되는 한국영화 60편에 투입되는 제작비를 모두 끌어모아도 단 한 편의 미국영화 제작비보다 적다. 영화의 규모·질·시장장악력의 편차가 최소 10배 이상이기 때문에 「경쟁」 자체가 성립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영」을 통해 완결되는 영화의 특성도 감안돼야 한다. 즉, 배급단계에서의 시장논리가 영화의 사활을 쥐고 있기 때문이다. 상업적 이익 여부를 주된 가치판단의 척도로 삼는 영화관 경영인들은 『10억원이 투입된 한국영화보다 1천3백억원 이상이 투입된 미국영화가 관객을 끌어들이는 데 유리하다』고 생각할 게 당연하다. 이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우리만의 문화를 향유할 최소한의 권리가 박탈되는 것을 의미한다는 게 영화인들의 한결 같은 주장이다.

 영화인들은 이 같은 상황을 방지하는 최후의 방어선이 스크린쿼터라고 보고 있다. 즉, 일정 기간 동안 한국영화를 상영하도록 의무화함으로써 △한국 고유의 영상문화를 보호하고 △안정적인 한국영화 제작을 유도해 영상산업의 발전을 도모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들은 성명을 통해 『한국영화는 21세기 영상산업과 콘텐츠산업의 전략적 요충지이자 자원으로, 그 부가가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라며 『스크린쿼터의 폐지 또는 축소는 반경제적인 행위』라고 성토했다.

 최근에는 20여개 시민단체들이 「우리영화지키기 범국민공동대책위」를 결성, 스크린쿼터의 사수를 천명하는 등 잇달아 대응에 나서고 있어 정부의 대응안으로 알려진 「스크린쿼터 92일로 축소, 또는 축소폭 확대」 방안은 관철되기까지 수많은 반발에 부닥칠 것으로 전망된다.

<이은용기자 eylee@et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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