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의 역할
신기술 개발은 수많은 벤처기업을 양산한다. 어느 기업이든 설립 당시 벤처가 아닌 기업은 없겠지만 정보기술(IT) 기업의 경우 벤처의 성격이 더욱 강하다. 기술 하나에 의존해 회사를 경영해나가고 있다. 한번 뜨기를 기대하며 소수의 엔지니어들이 밤새 불을 밝히는 것이다.
국내 네트워크 벤처기업들도 마찬가지다. 신생기업이 대부분인 이들 기업의 연구인력은 고작해야 10여명도 채 안된다. 나름대로 네트워크 기술에서는 내로라하는 최고전문가 수준이다. 비록 열악한 환경에서 연구활동에 몰입하고 있지만 신기술이라는 자부심과 머지않아 세계 최고의 벤처기업이 될 것이라는 장밋빛 꿈을 꾸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냉혹하다. 신생기업들이 연구에 몰입하고 신기술 개발에 한눈 팔지 않고 정진해도 세계 네트워크 공룡기업들 앞에서는 언제나 뒤늦은 기술일 뿐이다. 보다 솔직히 말하자면 국내 네트워크 벤처기업들은 이들 공룡기업이 개발한 기술을 수용하는 데 급급하거나 아니면 이들 기술을 모방하는 데 그치는 수준이다. 지금껏 국내업체들이 먼저 신기술을 발표하거나 신제품을 내놓은 적은 없다. 또 제품을 생산한다 하더라도 핵심 칩은 전부 외국으로부터 수입하는 상황이다.
「통신자립」을 외치고 「정보대국」을 국시처럼 여기고 있지만 자립기술을 실현하기에는 왜소하기 그지없는 상황이다. 벤처기업들이 아무리 기술개발에 매달려도 기반기술의 부족과 연구원의 수, 투자액에서부터 외국기업들에 밀린다. 기술은 공짜가 아니다. 언제나 그렇듯 투자에 비례한다. 장기간에 걸쳐 미래기술을 예측하고 투자하는 것과 기술변화에 맞추기 위해 급작스레 개발에 나서는 것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외국 네트워크업체들 중 소위 글로벌기업이라고 자부하는 기업들의 연구원수는 기본적으로 5천명 이상이다. 세계적 통신기업인 루슨트테크놀로지스의 연구소인 벨랩은 연구원수만 2만4천명이다. 물론 전부가 데이터통신에만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기반기술 확보에서 우리 벤처기업들과의 차이를 여실히 느낄 수밖에 없다. 또 전체매출의 4%를 기술개발에 투자한다. 국내 네트워크 대기업의 수배 내지는 수십배에 달하는 연매출을 기술개발에 쏟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시스코시스템스·스리콤·노텔네트웍스 등 대규모 네트워크업체들도 마찬가지다. 연구원수만 수천명에 달하고 기술개발 투자액만 해도 웬만한 대기업 매출을 웃돈다. 여기에 국내 네트워크 벤처기업들이 기술로 승부한다는 것은 어찌보면 「달걀로 바위치기」일지 모른다. 이미 네트워크 기술은 정점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 데이터통신이 주목받기 시작하고 네트워크 장비가 기업고객들에 인식되기 시작할 때와는 차원이 다르다. 극적인 다윗의 승리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렇다고 기술개발을 포기할 수는 없다. 무작정 외국기술을 수용하고 외산제품에 물들다간 「21세기 기술식민지」로 전락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국내 네트워크산업이 나아갈 방향은 대기업과 정부가 주축이 돼 핵심 기반기술 개발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대기업 네트워크사업부의 한 관계자는 『데이터통신시대를 맞아 전세계를 상대로 경쟁해야 하는만큼 네트워크사업은 대대적인 기술개발 투자와 체계적인 영업전략을 가진 대기업이 나서야 한다』며 『국내 네트워크 대기업들도 인식을 전환해 국가차원의 경쟁력 향상을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국내 벤처기업들도 무작정 기술개발에 나서는 것보다 대기업과 협력해 부분기술을 개발, 틈새시장을 공략하는 공조체제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이경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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