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전지팩업계에 구조조정 바람이 불고 있다.
수년동안 국내 전지팩시장을 리드해온 전지팩업체들이 지난해 말부터 국내 산업계를 강타하고 있는 국제통화기금(IMF) 여파로 인한 급격한 수요위축과 대기업의 잇따른 전지팩 사업 참여로 안팎 곱사등이처럼 휘어지고 있다.
지난해까지 호황을 구가하던 국내 전지팩업체가 올들어 생존 자체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된 것은 우선 국내 전지팩 수요의 격감 때문이다.
국내 전체 전지팩시장의 90% 정도를 휴대폰용 리튬이온 전지팩이 차지하고 있는데, 이 전지팩시장이 휴대폰의 보급 정체로 수요가 줄어든 데다 지난해의 경우 2셀(Cell)형 전지팩이 기본이었으나 올 들어서는 1셀형이 보편화하고 있다. 결국 지난해와 비슷한 정도로 휴대폰이 보급된다 해도 전체 전지팩시장 규모는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는 계산이다. 여기에 전지가격 하락요인까지 계산하면 올해 국내 전지팩시장 규모는 지난해의 3분의2 수준인 1천6백억원 남짓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여기에 국내 휴대폰업체들과 계열관계를 맺고 있는 신규 전지팩업체들이 이 사업에 본격 참여하거나 사업을 강화하고 있어 전문업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올해 국내 전지팩업계에 혜성처럼 나타나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업체는 바로 성우에너지다.
성우에너지는 올초 현대전자와 텔슨전자에 리튬이온 전지팩 공급을 계기로 전지팩 사업을 본격화했다.성우에너지는 현대전자와 텔슨전자의 전폭적인 지원에 힘입어 성남공장의 전지팩 조립라인을 크게 확대, 현재 월 20만팩 정도의 전지팩을 생산하고 있다.
새한이 리튬이온전지팩 사업에 참여한 것도 전지팩업계는 충격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올해부터 2차전지 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밝힌 새한은 최근 일본 소니사의 리튬이온전지를 휴대폰 및 노트북PC용 전지팩으로 조립할 수 있는 전지팩 전용라인을 충주공장에 구축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회사는 앞으로 본격 추진할 2차전지 사업의 경험 축적용으로 전지팩 사업을 전개한다고 설명하고 있으나 전문 전지팩업체는 이를 달갑지 않게 받아들이고 있다. 왜냐하면 2차전지 사업을 펼치고 있는 LG화학이 비슷한 명분을 내걸고 전지팩 조립 사업에 참여, 중소업체의 입지를 매우 좁게 만든 사례가 있었기 때문이다.
또 최근에는 신규 휴대폰업체를 등에 업은 특정 전지팩업체들이 등장할 것이라는 소문까지 나돌아 전문 전지팩업체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는 실정이다.
이같은 이중고로 2, 3년 전부터 우후죽순격으로 전지팩 사업에 참여, 10여개로 불어났던 국내 전지팩 전문업체는 조만간 5∼6개로 줄어들 것이라는게 업계의 전망이다.
기술력과 자본력, 특별한 「연줄」이 없는 중소 전지팩업체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반면 나름대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으면서 확실한 전지 공급망을 갖고 있는 전문 전지팩업체도 있다. 한림산전·샤프트코리아·붕주전자가 이 케이스에 해당한다. 한림산전은 지난해 국내 전지팩시장의 45% 정도를 차지할 정도로 이 분야에서 독보적인 업체며 샤프트코리아는 프랑스 최대 전지업체인 샤프트가 1백% 출자한 현지법인이다. 붕주전자는 LG화학과 LG정보통신의 지원에 힘입어 난국을 슬기롭게 헤쳐나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한림산전은 리튬이온전지용 보호회로를 자체 개발, 선진 전지업체로부터 제품사용 승인을 획득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아 내년부터 외국 휴대폰업체를 대상으로 수출에 본격 나선다는 계획을 수립해 놓고 있다. 샤프트코리아도 샤프트가 합작 설립한 일본 GS메코텍에서 리튬이온전지와 보호회로를 싼 값에 공급받을 수 있어 대리점을 통해 전지를 조달하는 여타 중소 전지팩업체보다 가격 측면에서 우위에 설 수 있는 여건을 구비하고 있다.
이처럼 대기업의 지원을 받고 있는 계열 전지팩업체와 전문 전지팩업체가 시장 주도권을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내 전지팩시장에 바이어블코리아가 등장, 업계의 주목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신생업체인 바이어블코리아가 업계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기존 전지팩업체와 달리 리튬폴리머전지팩 전문업체를 지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바이어블코리아는 올초 말레이시아 슈빌라사와 리튬폴리머전지 국내 독점 계약을 체결하고 리튬폴리머전지팩을 국내 처음으로 제작, 삼성전자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는 내친김에 리튬폴리머전지를 직접 개발, 생산하는 방안을 신중히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한편 국내 전지팩업체들은 협소한 내수시장을 탈피하기 위해 직접 해외시장 개척에 나서는 방안을 적극 검토, 내년부터 국산 전지팩이 해외시장에서도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림산전의 정충길 사장은 『미국·유럽 등지의 수출길은 무한대로 열려 있다』고 설명하면서 『기술력과 품질 수준만 유지하면 전지팩 자체도 하나의 독립 수출 유망 상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올해를 기점으로 국내 휴대폰 보급 추세가 역성장 추이를 보일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국내 주요 휴대폰업체들이 해외시장 개척에 본격 나서 전지팩의 동반 수출도 함께 이뤄져 전지업계는 여기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다.
또하나 전지팩업계를 고무시키는 것은 국내 주요 2차전지업체들이 이르면 내년경 국산 2차전지를 출시할 수 있다는 소식이다. 국산 전지팩이 생산되면 그동안 일본 전지업체에 이끌려온 국내 전지팩업체의 운신 폭이 크게 넓어질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내년에는 국산 전지로 포장된 국산 전지팩이 세계 정보통신기기 시장을 누비는 것도 현실로 다가올 전망이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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