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특집-소형전지> 2차전지 "불빛" 밝다

 신이 인류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해 예비해 둔 3대 선물이 있다. 그 가운데 반도체와 LCD는 이미 최첨단 정보통신기기에 폭넓게 적용되어 지구촌 커뮤니케이션 활성화에 견인차 역할을 함으로써 신의 은총에 화답하고 있다.

 나머지 하나인 전지는 정보통신산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면서도 국내에서 아직까지 만개하지 못한 분야다.

 이는 전지산업에 대한 국내 산업계의 인식이 반도체와 LCD에 상대적으로 뒤져 있었기 때문이다.

 국내 주요 재벌들은 일찍이 반도체와 LCD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방대한 투자를 단행, 오늘날 세계시장을 놓고 선진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다. 그러나 전지는 대기업의 관심을 끌지 못하는 서자산업으로 취급받아 온 게 사실이다. 이는 전지산업, 특히 2차 전지산업의 중요성을 일찍이 간파한 일본이 반도체에 버금가는 투자를 실시, 전세계 전지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것과 대조를 보이고 있다.

 뒤늦게 전지산업의 중요성을 인식한 국내 주요 그룹들은 전지사업단을 발족하고 주력 계열사를 동원, 전지 개발 및 생산에 본격 나서도록 독려하고 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국내 정보통신산업의 미래를 위해 다행스런 조치라는 게 업계의 평가다.

 전지산업이 이처럼 국내 재벌급 대기업의 관심주로 부상, 기업 변신을 이끌어갈 사업으로 재평가받고 있는 것은 전세계 전지시장이 갈수록 확대돼 「황금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지분야에서 세계적으로 가장 권위있는 조사기관으로 평가받고 있는 일본 노무라연구소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소형전지시장의 규모는 1조5천억엔을 상회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96년보다 20% 정도 늘어난 수치다. 이중 최근들어 시장성장률이 비록 한자리수로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최대 시장 수요를 갖고 있는 1차 전지 세계시장 규모는 1조엔에 달하고 있으며 2차 소형전지시장은 96년보다 무려 21%가 늘어난 5천억엔에 달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주목되는 것은 2차 소형전지시장이 급속히 확대되고 있다는 점이다. 리튬이온·니켈수소·니켈카드뮴으로 대표되는 2차 전지시장이 이처럼 눈덩이처럼 부풀고 있는 까닭은 이 전지가 대부분 컴퓨터·휴대폰 등 첨단 정보통신기기의 전원으로 사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들어 이들 정보통신기기의 보급추세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으며 특히 전세계적인 휴대폰 열풍으로 인해 2차 소형전지 수요도 덩달아 급성장할 것이라는 게 노무라연구소의 분석이다.

 노무라연구소가 분석한 세계 소형 2차 전지시장 분석 내용 중 2차 전지사업에 의욕적인 투자를 진척시키고 있는 국내 전지업체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은 기종 변화와 가격추이라 할 수 있다.

 전지에 관한 원천기술은 미국이 거의 보유하고 있는데도 생산기술 및 장비는 거의 일본이 갖고 있는 구도로 이 시장이 구획돼 있으며, 실제 세계 2차 전지시장은 일본업체들이 거의 석권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세계 전지시장 지배력을 갖고 있는 일본 유수의 전지업체들은 한국을 비롯해 전지분야에 의욕적인 투자를 진행하고 있는 잠재적 도전세력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제품 라이프사이클을 더욱 줄이는 한편 지속적인 가격인하 전략을 견지하고 있다.

 일례로 90년초까지 세계 소형 2차 전지시장의 맹주 역할을 해온 니켈카드뮴전지를 대체할 것이라는 전제 아래 니켈수소전지 부문에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바 있는 일본 전지업체들은 3년도 안돼 니켈수소전지의 후속기종으로 리튬이온전지를 생산, 주력 2차 소형전지로 키웠다. 3, 4년도 안되는 짧은 기간 내에 2차 소형전지의 주력모델인 니켈카드뮴전지를 퇴조시키고 니켈수소전지시장을 열었던 일본 전지업체들은 여기서 만족치 않고 리튬이온전지로 또 다시 세계 소형 2차 전지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리튬이온전지로 세계시장을 석권한 일본 전지업체들은 내친 김에 차세대 2차 소형전지로 각광받고 있는 리튬폴리머전지시장에서도 주도권을 유지한다는 전략 아래 올해말부터 초대규모 투자를 리튬이온전지분야에 쏟아붓고 있다.

 경쟁업체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숨가쁘게 제품 라이프사이클을 단축하고 있는 일본 전지업체들은 이와 병행해 가격인하 전략을 구사, 후발 경쟁국의 전지사업 참여의지를 꺽어 놓고 있다.

 리튬이온전지가 첫 선을 보인 지난 93년 개당 1천6백엔을 넘어섰던 리튬이온전지 가격은 지난 96년 1천2백엔으로, 97년에는 1천엔선에 머물더니 올해의 경우는 8백엔선에서 거래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니켈수소전지는 93년 4백엔대에서 올해는 1백50엔대로 절반 이상 떨어졌다. 결국 한국을 비롯한 후발 경쟁업체들은 미처 양산도 하기 전에 가격폭락사태를 맞고 있는 상황이다.

 이 같은 일본업체의 지속적인 견제에도 불구, 삼성전관·LG화학·SKC·새한·한일베일런스 등 대기업은 물론 로케트전기·서통 등 기존 1차 전지업체들까지 2차 전지사업에 가세해 일본 전지업체와의 일대 결전을 준비하고 있다.

 아직까지 국내 업체들은 2차 전지를 본격 생산하지 않고 있으나 이르면 내년, 늦어도 2000년경이면 리튬이온전지나 리튬폴리머전지를 본격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특히 2차 전지사업 진척에 가속도를 높이고 있는 삼성전관과 LG화학은 리튬이온전지를 최근 샘플 생산, 국내외 컴퓨터 및 휴대폰업체에 공급해 세계 전지업체의 주목을 받고 있다. 여기에다 차세대 전략사업으로 전지를 선정한 한일시멘트그룹은 미국 베일런스사와의 합작을 통해 차세대 2차 전지로 대두되고 있는 리튬폴리머전지 생산공장을 건설, 내년부터 본격 양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어 세계 리튬폴리머전지시장을 한국 기업이 리드할 수 있다는 희망적인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이처럼 올해 국내 2차 전지업체들이 미래를 향해 힘차게 나래를 펼친 데 비해 1차 전지업체들은 사상 유례없는 국제통화기금(IMF) 한파에 시달린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는 1차 전지의 주력시장이던 호출기 수요가 격감한 데다 장난감 등 1차 전지를 전원으로 사용하는 편의품들의 수요가 크게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50년간 국내 1차 전지시장의 터줏대감 역할을 해온 로케트전기가 국내 판권을 세계 최대 전지업체로 탈바꿈한 질레트에 양도함으로써 사실상 국내 1차 전지시장은 외국업체의 손아귀에 놓이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전지업체들은 미래 전지시장을 잡기 위해 다시 연구의 고삐를 조이고 있어 오는 2000년경 국내 전지산업은 또 다시 만개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지배적인 분석이다.

<이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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