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회의가 통합방송법의 정기국회 상정을 유보한 이후 방송계가 그야말로 벌집 쑤셔놓은 듯 뒤숭숭하다.
특히 국민회의가 통합방송법의 정기국회 상정을 유보하면서 「국민적 합의를 위한 한시적인 특별기구」의 설치 및 운영을 공식적으로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자 지상파방송·케이블TV·위성방송 사업자 등 방송사업자와 방송관련 단체 등은 정부 여당이 통합방송법의 제정 유보와 특별기구의 설치를 통해 향후 방송산업 구조를 어떻게 개편할 것인지에 대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방송노조연합 등 방송관련 단체들은 정부 여당이 추진중인 범국민적인 협의체 구성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방송개혁에 관한 논의가 정부 여당 주도로 이뤄지는 특별기구보다는 통합방송법 제정 후에 새로 출범하는 통합방송위원회에서 추진되는 게 바람직하다는 입장을 피력하고 있다.
이번 통합방송법 유보 조치를 바라보는 지상파방송사들의 시각은 매우 심각하다. 특히 방송사 노조 측은 국민회의의 이번 조치가 『방송을 장악하려는 정부 여당의 의지가 노골화한 것』이라며 이른 시일내에 KBS·MBC·CBS·EBS 등이 주축이 돼 파업 찬반투표를 실시, 전면 파업도 불사하겠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이들 방송사 노조와 방송인 현업단체 등은 정부 여당이 (가칭)방송개혁위원회(혹은 방송통신발전위원회) 등 특별기구의 구성을 통해 대대적인 방송구조 개편을 추진하려는 게 아니냐며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특히 정부 여당이 주도적으로 KBS의 대폭 축소, 방송사 지역국의 통폐합, 외주제작의 활성화, MBC·KBS 등 방송사의 송신기능 분리(송신공사 설립), MBC의 민영화 등 굵직굵직한 현안들을 추진하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다. 업계 일각에서는 향후 출범하는 방송개혁위원회가 KBS2의 민영화, EBS의 KBS 통합 등도 거론할 가능성이 있다고 추측성 발언을 하기도 한다.
통합방송법 유보 등 이 같은 일련의 조치는 결국 「국민의 정부」가 당초 집권 전에 밝힌 「방송위원회의 자율성 보장과 방송의 독립성 보장」이라는 의미를 크게 퇴색시키고 있다는 게 방송계의 기본적인 시각이다. 특히 정부가 지상파방송의 구조개혁에 가장 우선순위를 둬 방송개혁을 추진하려 한다는 것이다.
방송계 전문가들은 지난 20일 국민회의가 통합방송법 제정 지연으로 최대의 경영위기에 직면해 있는 케이블TV업계를 살리기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서 우선적으로 종합유선방송법을 개정, 각종 규제를 풀겠다는 방침을 밝힌 점도 정부 여당이 케이블TV 등 뉴미디어보다는 지상파방송의 구조개혁에 특별한 관심을 갖고 있음을 드러내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회의측은 이번 통합방송법 제정 유보 조치에 정치권 내부의 무슨 흑막이 있는 것처럼 해석하는 일부 시각에 대해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특히 방송사 노조나 언론개혁관련 시민단체들이 지상파방송사들의 대대적인 구조개편을 상정해 강력히 반발하고 있는 것은 일종의 「과민반응」이라고 항변하고 있다. 국민회의측 한 관계자는 『내년 2월 임시국회에서 통합방송법을 통과시키려면 일정이 매우 촉박한데, 그 짧은 시간안에 통신과 방송의 융합, 지상파방송의 전면적인 구조개편, 케이블TV와 중계유선간의 해묵은 갈등관계 해소방안 등을 마련하려면 시간이 모자란다』며 정부 여당이 방송유관단체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지상파방송의 개편에 관한 시나리오를 만들어 놓고 방송개혁위원회를 운영할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정부 여당이 통합방송법의 제정 유보와 특별기구의 구상을 밝힌 이상 조만간 특별기구 구성 움직임이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 기구가 노사정위원회처럼 대통령 직속기구로 구성될 경우 국무회의에 상정하는 과정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정계·방송계·학계 등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방송개혁위원회가 비로소 출범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지금처럼 방송관련단체들이 통합방송법의 유보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에서 방송단체들이 방송개혁위원회에 참여할지는 불투명하다.
게다가 한나라당이 이번 정기국회에 통합방송법을 상정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고, 그동안 국민회의와 공조체제를 유지해온 자민련측도 이번 국민회의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상황이어서 국민회의측의 통합방송법 유보에 따른 파장은 당분간 매우 클 것으로 예상된다.
<장길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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