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디지털 애니메이션 "토종 만세"

 국내 영상업계가 3D 디지털 애니메이션으로 비상구를 찾고 있다.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입체감이 풍부하고 생동감 넘치는 화면으로 관객들을 매료시켜 왔다. 그러나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처음부터 끝까지 컴퓨터그래픽만으로 이루어진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Full Digital Animation)은 그다지 흥행성이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질감이 부드러운 셀 방식에 비해 차갑고 딱딱한 느낌을 주기 때문에 관객들이 싫증을 느끼기 쉽다는 게 제작자들의 선입견이었다. 그래서 극영화가 SF장면에 특수효과를 동원하듯 전통적인 셀 애니메이션에 볼거리로 디지털 신을 끼워넣는 방식이 선호됐다. 마법에 걸린 촛대와 주전자들이 흥겹게 춤을 추는 「미녀와 야수」의 뮤지컬 장면이나 「알라딘」에서 하늘을 나는 카펫이 아슬아슬하게 동굴을 빠져나오는 탈출 신이 대표적인 예다.

 할리우드가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흥행성에 눈을 뜬 것은 지난 95년 「토이 스토리(Toy Story)」가 예상 밖의 잭풋을 터뜨리면서부터다. 지금은 화려하게 복귀한 컴퓨터 천재 스티브 잡스가 한때 애플사에서 쫓겨나 와신상담하던 시절에 퇴직금을 털어 인수한 디지털 스튜디오 픽사가 월트디즈니와 손잡고 만들어낸 작품이 바로 「토이 스토리」. 이 작품은 할리우드의 흥행자본과 실리콘밸리의 첨단기술이 만난 실리우드표 애니메이션이라는 찬사와 함께 극장은 물론 비디오와 캐릭터로도 대단한 상품성을 과시했다.

 올해는 「토이 스토리」가 3년 전 일으켰던 풀 디지털 애니메이션 선풍이 재현될 것으로 예상된다. 겨울극장가에서 스티븐 스필버그 사단의 드림웍스와 애니메이션의 종가 월트디즈니사가 한판 승부를 벌인다. 드림웍스의 「개미(Antz)」는 이미 국내에 상영중이고 월트디즈니의 「벅스 라이프(A Bug」s Life)」도 개봉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가 하면 국내 영화사들도 디지털 애니메이션에 도전장을 내밀기 시작했다. 가장 발빠르게 움직인 곳은 B29엔터프라이즈. 이 회사는 극장용 애니메이션 「철인사천왕」을 내년 1월에 개봉하고 가을에는 26부작 TV시리즈로 선보일 예정이다.

 한스글로벌C&A가 내년 12월 개봉을 목표로 준비중인 「셀마」는 벌써부터 업계의 눈길이 쏠리는 작품. 일신창투가 제작비를 대겠다고 나선데다 한국컴팩컴퓨터사가 컴퓨터 장비를 제공하고 인터넷서비스업체 골드뱅크가 마케팅을 지원하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모티브로 25세기 우주에서 모험이 펼쳐지는 「테크노팬터지」가 될 것이라는 게 한스글로벌측이 설명이다.

 그밖에 애니메이션 전문업체 페이스도 미래를 배경으로 별을 아름답게 가꾸며 평화롭게 사는 종족과 전쟁을 일삼는 종족간에 벌어지는 에피소드를 코믹하게 그린 「붕가부」를 총 26부작의 TV용 시리즈물과 극장용 영화로 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들 토종 디지털 애니메이션이 과연 성공을 거둘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우선 일본과 미국의 하청으로 길들여져 온 애니메이션업계가 얼마나 독창적인 작품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인가가 문제. 잘 짜여진 각본과 철저한 기획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할리우드의 세련된 영상에 길들여진 관객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킬 수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도 걸림돌이 되고 있는 것은 충분한 제작비를 확보하기가 어렵다는 사실. 투자자들 대부분이 흥행성에 대한 확신을 갖지 못하는 탓에 과감한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 TV용 디지털 애니메이션의 제작을 중단한 한 영화사는 『영상관련 대기업들이 2년 정도는 지나야 3D 애니메이션에 투자여력이 생길 것 같다면서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고 털어놓는다.

 TV물의 경우 셀 애니메이션의 20분물 제작비가 6천만∼7천만원 수준인 데 비해 디지털 애니메이션은 최소 1억원 정도가 소요된다. 극장용 장편은 최소한 30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같은 사정 때문에 5분 정도의 데모CD를 먼저 만들어 놓고도 제작자를 찾지 못해 애태우는 제작사들이 많은 실정이다.

 그러나 알고 보면 디지털 애니메이션이야말로 우리나라가 해외 니치마켓을 개척할 수 있는 최적의 아이템. 미국을 제외하면 아무도 텃밭을 일구어 놓지 않은 미개척 분야인데다 우리나라의 경우 관련기술의 수준이 높고 인건비도 비교적 경쟁력이 있기 때문. 따라서 지금부터 서두를 경우 2∼3년 후에는 디지털 애니메이션 부문에서 세계적인 히트작을 만들어낼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이선기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