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의 정보통신 현주소

 오래 전부터 그리워하던 곳이 있다. 손을 뻗치면 금방이라도 닿을 듯 가깝지만 지구의 반대편보다도 먼 땅. 우리와 똑같은 얼굴로 똑같은 말을 하는 사람들이 산다는 사실을 잊은 것처럼 살아야 했던 곳.

 그 땅에 지난 18일 금강산 관광선이 출항했다. 비록 관광 목적이기는 하지만 북한과의 교류가 이처럼 본격화되기는 분단 50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번 관광을 계기로 남북의 협력이 더욱 활성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정보통신 관련 업체들도 최근의 협력 분위기를 타고 부품임가공 등 북한과 다양한 교류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우리의 새로운 파트너로 부상하고 있는 북한의 정보통신 수준은 얼마나 될까.

 이에 대해 북한을 방문한 경험이 있는 정보통신 관계자들은 『최근 경제난으로 인해 관련 장비와 프로그램 등이 매우 부족하기는 하지만 인적 자원의 수준은 아주 높은 편』이라고 말한다. 북한으로부터 PCB를 공급받아 모니터를 생산하고 있는 케테르의 심대현 이사는 『북한의 기술자들이 대부분 학력이 높고 이론에 밝은 편』이라고 설명했다.

 북한당국은 매년 전국 규모의 프로그램경진대회를 개최, 우수한 인재를 발굴하고 프로그램 개발 전담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이 분야 육성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특히 올 2월에는 김정일이 직접 「제8회 프로그램경진대회 및 전시회」에 참석, 출품된 작품을 돌아보고 『학생들에게 어려서부터 컴퓨터 교육을 실속있게 진행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실제로 북한은 주요대회 입상자들에게 자신이 원하는 대학에 마음대로 입학할 수 있는 특권을 주고 있다.

 이같은 장려정책 덕분에 우수한 인재들이 소프트웨어 분야로의 진출을 원하고 있으며, 컴퓨터 전문대학인 평양전자계산기단과대학·김책공대 등은 북한내 우수한 인재들이 선호하는 곳으로 알려지고 있다.

 북한은 지난 3월 「전국음성인식 프로그램 경연대회」를 개최했다. 이 대회에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개발한 음성인식프로그램 「룡남산」, 국가과학원 수학연구소에서 개발한 단음절인식기 「칠보산」, 김책공대에서 개발한 문서낭독시스템인 「효성」이 우수작으로 뽑혔다.

 또 지난 9월에는 일본에서 개최된 「제4차 포스트컵 세계 컴퓨터 바둑선수권대회」에서 북한의 은별컴퓨터기술무역센터에서 개발한 「은바둑」이 1위를 하기도 했다. 이 센터에서는 원격조작을 위한 통신프로그램인 「은거울」, 한글과 영어·일본어 등 다국어인식 프로그램, 전자사전 등을 제작했으며 외국의 의뢰를 받아 프로그램을 개발하기도 한다고 북한 중앙통신은 보도하고 있다. 지난달에는 「조선컴퓨터센터(KCC)」와 일본 시지에스사가 공동 개발한 한글입력시스템 「윈크98 4.0」과 「윈크 OCR」를 일본 PC월드엑스포에 출품해 주목을 받기도 했다.

 이와 함께 조선컴퓨터센터에서 개발한 「항공교통지휘시스템」은 지난 93년부터 평양국제비행장에 도입돼 정상 가동되고 있는데 비슷한 러시아 제품보다 우수하고 독일 제품보다 가격이 저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또 자체 개발한 POS시스템 역시 북한의 많은 백화점에서 사용되고 있는 상태다.

 포항공대 박찬모 교수는 『북한의 프로그래머들은 C나 #는 물론 비주얼베이식·자바 등의 언어를 사용하고 있으며, 일본·싱가포르 등을 통해 일본의 「BIT」나 미국의 「IEEE Transaction」 등 컴퓨터 관련 서적들을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뛰어난 소프트웨어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반면 하드웨어 보급률이나 관련 기술은 상대적으로 떨어져 있는 상태다. PC를 보유하고 있는 가정이 많지 않은 상태고 교수들은 펜티엄PC를 활용하지만 대학생들은 아직 386이나 486PC를 주로 이용하고 있다.

  통신의 보급률은 더욱 열악한 실정이다. 북한체제가 주민끼리의 통신을 장려하지 않고 있는데다 해외 국가와의 교류도 많지 않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인터넷이나 PC통신처럼 일반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개방형 온라인 서비스는 없다.

 그러나 북한도 최근 통신의 중요성을 인식, 통신망 현대화를 추진중이다. 지난해 4월에는 평양과 각도의 주요 도시를 연결하는 시외전화망을 자동화하는 공사를 완공했으며 96년부터 통신망을 동케이블에서 광케이블로 바꾸고 통신방법도 디지털화하고 있다. 이와 관련, 북한은 최근 디지털 전자교환기 40만 회선과 이동통신 2만 회선을 설치하는 「통신 및 TV전송망 현대화 사업」을 확정, 지난해 홍콩 허치슨사와 이를 공동 추진하기 위한 의향서를 교환하기도 했다.

 한국통신 남북협력기획부 전민주 부장은 『수동교환기와 광케이블을 북한이 직접 생산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평양에서 무선호출(주머니종) 시범서비스가 실시됐다는 말을 들었다』며 『북한의 통신시설은 70년대의 수동교환기와 최신 전전자 교환기가 함께 사용되는 과도기이지만 의욕적으로 최신기술을 도입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번 금강산 관광은 남북이 대화와 협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물꼬가 된 셈이다. 이를 계기로 사회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이 이뤄져야 한다는 게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전문가들은 정보통신 분야의 교류야말로 그 어떤 분야보다 시급하고 파급력이 클 것이라고 강조한다. 디지털 시대에 남북의 정보통신 교류만큼 시급한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포항공대 박찬모 교수는 『얼마전 독일의 한 전문가가 남북한이 통일에 대비하려면 정보통신 분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지적하는 것을 인상깊게 들었다』며 『남북의 기술격차를 줄이고 정보사회를 조기에 정착시키려면 민간차원에서의 대화와 교류가 활발히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우수한 북한의 인력과 우리의 하드웨어 기술, 자본력을 결합해 정보통신연구소를 설립한다든지 북한의 컴퓨터전문가 양성을 지원하는 일 등이 구체적인 대안으로 제시되고 있다.

<장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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