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IMF시대 이사람을 주목하라 (34)

신기전자 이병직 사장

 『부도보다도 무서운 것은 스스로 포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병직 신기전자 사장은 지난해 이맘때 국가 경제의 위기 속에서 처음으로 부도라는 것을 경험했다. 직접 부도를 낸 것은 아니었지만 모기업격인 뉴텍컴퓨터와 거래하는 과정에서 받은 어음이 부도 처리되면서 연쇄부도를 맞은 셈이다.

 이 사장의 당시 직책은 신기전자의 전신인 제이전자 사업본부장. 중견 PC유통업체인 뉴텍컴퓨터에서 계열사인 제이전자로 옮겨온 지 5개월 만의 일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이 완전히 끝난 것 같은 심정이었다.

 숨어다니기를 2개월여. 당시 가장 큰 채권자면서 친하게 지내던 거래처 사장한테서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그렇게 무책임하게 피해다니기만 해서 어떻게 하냐, 채권단을 설득해 볼테니 다시 시작해 보는 게 어떠냐』는 이야기였다.

 가장 큰 채권자가 밀어주겠다고 하니 희망이 생겼다. 한달 동안 채권자들을 쫓아다니며 『이대로 가면 모두가 망한다. 재고를 팔아서 급한 채무 일부를 갚아줄테니 조금만 참아달라』고 설득했다.

 공장에 있던 PC 케이스를 용산에 들고 나가 원가에도 못 미치는 가격으로 팔아서 일부라도 채무를 갚아주니 거래처 사장들의 태도가 조금씩 변했다. 일단 채무를 동결하고 1억원의 자금을 모아 줄테니 다시 시작해보라는 것이었다.

 회사 이름도 신기전자로 바꾸고 사장이 됐다. 『회사가 살아날 때까지 월급의 50%만 주고 대신 회사가 정상화됐을 때 경영이익의 30%를 되돌려줄테니 도와달라』고 다시 직원들에게 부탁했다. 그 다음의 문제는 영업이었다.

 『매일 자동차 기름을 다시 채워넣을 정도로 정신없이 뛰었습니다. 마침 국내 경제가 공황상태를 넘기며 PC 케이스에 대한 수요가 조금씩 일어났습니다.』

 컴마을에서 PC 케이스를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방식으로 받고 싶다는 연락이 왔다. 사람과컴퓨터에서도 비슷한 주문이 들어왔다. MG테크·성광전자·엔케이시스템 등 용산 등지의 유통망을 정비해 내수판매에서 월 1만∼1만5천대 규모의 고정적인 물량을 확보했다.

 재기의 발판은 해외 시장에서 마련됐다. 일본 윈&윈사, 미국 유나이트콤텍사 등이 연간 2백만달러 규모의 수입 주문을 내온 것이다.

 신기전자는 요즈음 전직원이 2교대로 하루 24시간 근무를 한다. 국내외에서 밀려드는 주문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수요가 밀려드는 것은 국내 PC 케이스업계가 전반적인 호황국면에 들어섰다는 데서 큰 원인을 찾을 수 있습니다. 절망의 나락에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면 지금 같은 순간을 맞지 못했겠지요』라고 말하는 이 사장의 얼굴에는 큰 위기를 넘긴 안도와 어떤 상황에서도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배어 있었다.

<함종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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