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존 아날로그 TV시장에서는 연간 1천4백만대의 생산능력을 갖춘 일본 소니의 아성이 가히 철옹성이다. 네덜란드의 필립스와 일본의 마쓰시타가 연간 1천2백만대의 생산능력으로 소니를 바짝 추격하고 있을 뿐이다. 그 뒤를 잇고 있는 기업이 프랑스의 톰슨과 국내 가전 3사인 삼성·LG·대우다.
세계 TV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7강체제 내에서도 소니·필립스·마쓰시타·톰슨 등은 일류브랜드로, 국내 가전 3사는 이류브랜드로 이미지가 고착된 것이 사실이다. 그 이유는 4사는 선진시장인 일본·미국·유럽에 근거를 두고 있는 데다 대형 고가 수요를 장악하고 있는 데 비해 국내 3사는 동남아·중남미 등 성장시장과 선진시장의 중소형 저가수요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방송 개막은 현재 연간 1억2천만대라는 대규모시장을 놓고 각축을 벌이고 있는 세계 컬러TV업계 판도에 새로운 변화를 몰고올 조짐이다.
이류브랜드로 이미지가 고착돼온 국내 업계가 선진 4사를 제치고 기술과 품질면에서 더 좋은 평가와 실적을 올릴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기 때문이다.
만년 이류라는 설움에 시달려온 국내 업계로선 그동안 사생결단으로 디지털TV에 매달려왔기 때문에 선진 4사보다 일단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지난 4월 열린 미국방송장비전(NAB쇼)에서 가장 완벽한 제품을 선보였다는 찬사를 받았다. 미국 유일의 TV업체인 제니스를 매입함으로써 미국 디지털방송(ATV) 표준 전송규격 특허권을 보유한 LG전자는 디지털방송 수신감도가 가장 뛰어난 고선명(HD)TV를 개발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또 삼성전자는 NAB쇼에서 유일하게 실제로 디지털방송을 수신할 수 있는 상품을 선보여 방송국들이 실시한 디지털방송 홍보를 위한 전국 로드쇼에 사용되기도 했다.
이에 비해 일본 업체들은 한동안 아날로그방식 HDTV를 표준으로 삼아 다시 한 번 이 분야 세계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전략으로 일관해왔기 때문에 국내 업계보다 디지털TV에 대한 준비가 소홀했다. 특히 세계 TV산업의 절대강자로 군림해온 소니의 경우 아직까지도 디지털TV 핵심칩세트를 자체 생산하지 못한 채 LG전자나 톰슨·미쓰비시가 개발해 공급하는 제품을 구해다 써야 하는 실정이다.
필립스 역시 트라이미디어라는 자사 멀티미디어 프로세서를 이용해 소프트웨어적으로 HDTV 방송신호를 디코딩하는 방식을 채용하고 있어 이 분야에서 얼마만큼 경쟁력을 지니게 될 것인지 불확실한 형편이다.
일본 미쓰비시는 루슨트테크놀로지스와 함께 1세대 HDTV 칩세트를 개발하고 마이크로소프트(MS)·인텔·컴팩 등으로 구성된 DTV팀에 합류, PC에 기반을 둔 2세대 HDTV 칩세트 개발에 나섬으로써 승부의 방향을 PC쪽으로 선회하고 있다.
각종 시장조사기관들은 디지털TV 가격이 기존 TV의 수배에 달해 오는 2000년에 2백60만대 규모를 형성할 것으로 전망하는 등 아직은 기존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들 조사기관은 디지털TV 시장규모가 가격하락을 유도할 수 있는 규모에만 이른다면 과거 흑백TV가 순식간에 컬러TV로 대체됐듯이 급속히 아날로그TV를 대체해 나갈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다.
따라서 세계 TV산업구조는 국내 업계가 디지털TV시장을 초기에 선점하는 데 성공한다면 역전의 드라마가 펼쳐질 것으로 기대된다.
특히 최근 10여 년 동안 국내 업계에 족쇄를 채워왔던 미국의 한국산TV 덤핑관세부과 조치가 해소되고 유럽의 덤핑부과율도 낮아지고 있다는 점은 국내 업계에 더욱 큰 힘이 되고 있다.
선진업체에 비해 현지생산력이 떨어지는 국내 업계는 덤핑의 족쇄에서 풀려나 고품질의 한국산 TV로 선진시장의 대형 고급제품 수요를 공략할 수 있는 길이 활짝 열렸기 때문이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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