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관람석> 로리타

 40대 남자와 10대 소녀의 사랑, 거기에 「나인 하프 위크」와 「위험한 정사」 등을 연출했던 애드리언 라인 감독, 「데미지」의 제레미 아이언스까지. 일단 영화 「로리타」는 은밀함과 욕정에 대한 호기심을 두드리는 완벽한 삼박자를 갖추고 있는 셈이다.

 출판 당시 비도덕적이며 비윤리적이라는 비난과 함께 화제가 됐던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원작소설을 바탕으로 한 영화 「로리타」. 그러나 기대만큼 애드리언 라인의 감각적 선정주의가 빛을 발하지는 못한다. CF감독 출신답게 화면은 여전히 탐미적이지만 그것은 더 이상 새롭게 느껴지지 않는다. 그래서 「로리타」는 관객의 두 가지 기대를 모두 저버린다. 한 여자에 대한 한 남자의 색다른 사랑이야기를 원했던 관객이라면 성적 욕망의 대상이 어린 여자아이라는 것 외에 전혀 다를 게 없다는 데 구태의연함을 느꼈을 것이고, 감독의 명성에 걸맞은 도발적이고 자극적인 영상을 원했던 관객이라면 지루한 말다툼을 보는 듯한 답답함을 느낄 법도 하다.

 14세 때 동갑내기 소녀와 열정적인 사랑에 빠졌던 험버트(제레미 아이언스)는 3개월 후 소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30여년의 세월이 흐른 후 험버트는 여전히 그녀와의 사랑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중년의 불문학 교수가 돼 있다. 강의를 위해 뉴잉글랜드의 작은 마을로 오게 된 험버트는 머물 곳을 찾던 중 샬롯(멜라니 그리피스)이라는 과부의 집에서 그녀의 딸 로리타(도미니크 스웨인)를 보게 된다. 험버트는 자신이 그려왔던 어린 연인의 이미지를 로리타에게서 느끼게 되고 결국 그녀와 함께 있기 위해 샬롯의 집에 머물기로 결정한다.

 험버트는 은밀하게 다가오는 로리타의 유혹과 샬롯의 적극적인 애정공세 사이에 끼이게 되고, 로리타의 곁에 머물기 위해 겉으론 샬롯을 받아들이는 척한다. 그러나 얼마 후 험버트가 자신의 딸을 사랑한다는 것을 알게 된 샬롯이 자동차 사고로 죽자 험버트는 로리타를 차에 태우고 여행을 시작한다. 이미 자신의 모든 것을 로리타에게 빼앗겨버린 험버트는 그녀를 점점 더 구속하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험버트의 몸에 싫증을 느끼게 된 로리타는 계속 떠나려 한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 앞에 킬티가 나타나고 로리타가 사라진다.

 파행적 사랑의 끝은 언제나 예정된 비극이다. 그 비극이 얼마만큼 관객을 동조하게 만드는가 하는 것은 결국 영화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악마적이고 당돌한 14세 소녀에 대한 강박관념에 가까운 중년 남성의 이야기는 선정적인 이미지만 있을 뿐 실체는 보이지 않는 어정쩡한 모습이 되고 말았다. 「로리타」는 결국 욕망에 빠진 중년의 남성이 부르는 러브 팬터지인 셈이다.

<엄용주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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