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감청과 도청

 합법적인 감청과 불법도청. 이번 국회 정보통신기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최대 쟁점으로 등장한 이슈다. 이번 논쟁은 정치 색깔만 살짝 제거하면 그동안 눈부신 정보통신 발전신화에 가려져 있던 이면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줬다는 점에서 그 의의를 찾을 수 있다. 이 논쟁을 계기로 최근 전세계적으로 극성을 부리고 있는 불법 도청의 세계를 한번 살짝 들여다보기로 하자.

 「무엇이든지 엿들을 수 있다.」 첩보영화에서나 보던 새로운 도청방식이 연이어 등장하고 기기도 첨단화·소형화 추세가 뚜렷해지고 있다. 전화회선에 발신기를 부착, 통화내용을 유·무선으로 가로채는 전화도청의 경우 전화단자함에 설치되던 발신기 크기가 예전에는 성냥갑 정도였으나 최근에는 엄지손톱보다 작은 초소형이 개발돼 판매되는 상황이다.

 FM주파수를 이용해 수신하는 무선 전화도청·음성도청에 최근 들어 1㎞ 이상 떨어진 거리에서도 청취 가능한 UHF 주파수대 수신장치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또 3, 4년 전부터 무선통화를 엿듣는 데 사용되던 올밴드 수신기가 일본에서 대량 수입돼 세운·용산상가 등지에서 60만원선에 거래되고 있다. 1㎐∼1㎓까지 넓은 수신대역을 가진 올밴드 수신기를 갖추면 무선전화나 경찰무선은 물론 항공기 조종사와 관제사 끼리의 대화까지 도청할 수 있다.

 한편 레이저·전자파·적외선을 이용한 첨단 도청기술은 아직 국내에 보편화되지 않았으나 국제 도청시장에서는 수요가 점차 증가하는 추세로 조만간 국내에도 상륙할 전망이다. 최첨단 기술로는 실외에서 창문에 레이저빔을 발사해 공기진동을 포착, 대화내용을 엿듣는 방식이 대표적이며 PC에서 발생하는 전자파를 잡아 모니터에 뜬 내용을 알아내는 도청도 이미 선진국에서 선보이고 있다.

 또 선진국 정보기관들의 경제 첩보전이 갈수록 치열해짐에 따라 자국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는 경쟁기업의 전화나 전자우편을 도청하는 일은 보통이고 컴퓨터 전자파를 분석, 정보를 해석해내는 기법까지 등장했다. 90년대 들어 냉전이 종식된 뒤 강대국 정보기관들은 과거의 군사·정치·외교관련 정보수집에서 벗어나 경제·기업 정보 획득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있다.

 미국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보장국(NSA)은 최근 유럽지역에서 유럽기업은 물론 일본기업의 전화·전자우편·팩스까지 도청, 자국 기업에 관련정보를 제공해왔다고 일본 마이니치 신문이 최근 보도하기도 했다.

 이 정보를 이용해 한 미국기업은 프랑스의 전기·전자회사인 톰슨CSF가 브라질과 맺은 레이더 매매계약을 몽땅 가로챘다는 것이다. 또 미국 최대 전화회사인 AT&T도 NSA와 미 중앙정보국(CIA)의 도움을 받아 일본 NEC가 추진하던 인도네시아 전기통신시설 정비사업을 뚫고 들어가 계약의 절반을 따냈다.

 미국만이 아니다. 영국의 정보기관 M16도 독일 분데스방크(중앙은행)에 첩보원을 심어 몇년 동안 비밀정보 수집활동을 벌여온 것이 최근 들통났다. 또 지난해에는 일본무역진흥회(JETRO)가 미국에서 산업 스파이 활동을 벌였다는 혐의를 받아 양국간 외교문제로 비화하기도 했다. 프랑스 정보기관은 에어 프랑스 여객기에 도청장치를 설치, 미국기업 간부들의 대화내용을 도청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기업들은 자국의 정보기관에서 넘겨받은 정보를 효과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정보분석시스템을 적극 개발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경쟁정보전문가협회(SCIP)에 따르면 마이크로소프트의 정보 분석력이 가장 뛰어나며 모토롤러·IBM·프록터 앤드 갬블(P&G)사 등이 그 뒤를 잇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보전쟁에 관한 한 역시 미국 기업들이 저만큼 앞서가고 있다는 것이다. 또 도청·직원매수·해킹 등 고전적 수법을 넘어 최근에는 신종 정보수집 방법도 속속 선보이고 있다. 컴퓨터에서 나오는 전자파를 분석, 작업내용을 알아내는 방식도 등장하고 있다.

 이에 따라 산업 스파이 방어기술도 급속하게 발전하고 있다. 심지어 전자파 해독을 막기 위해 주컴퓨터 주변에 다른 컴퓨터를 설치해 전자파를 교란하기도 한다는 설명이다. 또 치열한 첩보전 속에서 기업들은 큰 계약을 앞두고는 반드시 호텔을 바꾸고 휴대폰을 쓰지 말라는 등의 정보단속 수칙도 마련, 시행하고 있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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