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년대 어느 날, 영국 윌트셔 지방의 한 시골 동네를 초로의 신사 두 사람이 한가롭게 산책하고 있었다.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면, 그 이름을 뭐라고 붙이면 좋을까?』
『가이아(Gaia)가 좋겠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대지의 여신이지.』
질문을 한 사람은 영국의 저명한 행성학자 제임스 러브록이었고 대답한 사람은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세계적인 작가 윌리엄 골딩이었다.
지구가 살아있는 하나의 생명체라는 가설, 이것이 바로 「가이아 이론」이다. 이 아이디어는 79년에 러브록이 펴낸 책 「가이아」로 인해 세상에 널리 퍼지게 되었으나 사실은 오래 전부터 여러 학자들이 생각해왔던 것이다.
러브록이 이 이론을 발전시켜왔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비화가 있다. 그는 50년대 후반 전자 포획기라는 새로운 물질 분석장치를 발명해서 명성을 얻었는데 그 기기를 사용하면 지구상의 어떤 곳에서라도 대기에 섞여있는 아주 적은 양의 원소를 검출해낼 수 있었다.
그뒤 러브록의 전자 포획기는 인간이 배출한 공해물질의 오염도를 측정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남극을 비롯한 세계 도처에서 염화불화탄소(CFC)나 DDT 같은 살충제 성분을 찾아낸 것이다.
그러자 미항공우주국(NASA)에서 러브록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화성 탐사선 바이킹호에 탑재할 생명체 탐지장치에 대해 자문을 구한 것이다. 러브록은 몇달 동안 고심하고 연구한 끝에 대답했다.
『화성에 생명이 존재하는지 알고 싶다면 굳이 탐사선을 보낼 필요가 없어요. 여기서도 알 수 있지요. 화성은 광물처럼 완전히 죽은 존재입니다.』
러브록의 단언은 화성의 대기를 분석한 결과로 나온 것이다(화성을 비롯한 천체들은 빛의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화학적 조성을 알 수 있다). 화성의 대기는 대부분 이산화탄소로 구성되어 있으며 산소는 거의 없다. 반면에 지구의 대기에는 산소가 21%나 되지만 이산화탄소는 1% 미만이다.
산소는 무척이나 불안정한 기체다. 다른 물질들과 반응성이 크고 잠재적인 폭발성까지 있다. 산소가 있으면 불이 계속 타오르고 쇠는 녹이 슬며 동식물은 호흡을 한다. 그런데 녹이 슬거나 호흡을 하는 것도 엄밀하게 말하면 아주 느리게 진행되는 연소현상이다. 즉, 불이 타는 것과 마찬가지 반응인 것이다.
따라서 지구상에 산소가 생겨난 이래 그토록 오랜 기간 동안 갖가지 연소 반응이 진행돼왔다면, 이미 대기중의 산소는 오래 전에 거덜났어야 마땅하다. 그런데 그 산소를 계속 보충해주는 것이 바로 녹색 식물이다.
따라서 러브록은 화성의 생명체를 찾기 위해 탐사선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한 것이다. 화성의 대기에 산소가 존재하는지, 아니면 적어도 화성의 화학적 대기 조성에 어떤 불안정한 상태는 없는지 알아보는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한 것이다.
러브록이 가이아 이론을 발전시킨 바탕은 불안정한 지구 대기의 절묘한 균형 유지 때문이었다.
만약 대기중의 산소가 지금보다 5∼10%만 늘어나도, 온 세상은 불바다가 되고 모든 생명체는 끝장이 난다. 반면에 5∼10%만 줄어들면 미생물체 이상 규모의 생물체는 호흡하며 살 수가 없다. 적어도 인간의 생존은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무엇이 지구의 산소 농도를 수억년이 넘도록 일정하게 유지시켜왔던가? 지구상의 모든 생물체들이 이루고 있는 하나의 거대한 생물권(바이오스피어:biosphere)이 대기권·암석권·수권 등 지구의 다른 부분들과 복잡한 상호작용을 하면서도 절묘한 균형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
러브록은 그 해답으로 지구가 하나의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가이아 이론을 내놓은 것이다.
<박상준·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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