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빗장 풀린 일본 대중문화, 영상산업 시스템을 바꾸자 (6)

애니메이션

 일본산 애니메이션, 즉 재패니메이션은 큰 문화충격 없이 한국시장에 입성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춘데다, 유관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커 예의주시할 문화상품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철완 아톰」 「은하철도 999」 「정글대제(밀림의 왕자 레오)」 「드래곤볼」 「슬램 덩크」 「세일러문」 등 많은 TV용 재패니메이션이 이미 한국 지상파TV를 통해 소개됐고, 앞으로도 극장용 애니메이션부터 캐릭터 상품에 이르는 재패니메이션 및 부가상품이 봇물처럼 밀려올 태세이기 때문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작품은 작년 일본에서 개봉된 극장판 애니메이션인 「원령공주」와 「신세기 에반겔리온」. 「원령공주」(감독 미야자키 하야오)는 3년의 제작기간에 20억엔(약 1백80억원)의 제작비가 투입된 대작으로 관람객 1천만명, 1백70억엔을 넘어서는 흥행실적을 거뒀다. 「신세기 에반겔리온」(감독 안노 히데야키)은 총 26부작 TV시리즈가 95년 10월부터 96년 3월까지 방영됐고, 첫 극장판 「죽음과 재생」(97년 3월)과 「에반겔리온의 종말」(8월)이 상영되면서 캐릭터 관련상품·LD·비디오·CD 등의 판매수입만도 3백억엔에 이른다. 현재 「원령공주」는 월트디즈니의 배급망을 타고 세계로 수출되고 있으며, 「신세기 에반겔리온」도 TV용 애니메이션이 미국에서 비디오로 출시되고 있다.

 이렇듯 97년은 재패니메이션이 극장판의 성공을 등에 업고 세계로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한 해이고, 이제 문화개방을 계기로 한국에 대한 공세도 본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실제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는 한국이 아시아지역 수출량의 33% 이상을 소화할 능력을 가진 것으로 평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재패니메이션이 개방될 경우 97년 현재 3천1백70억원에 달하는 한국시장에서 극장용 50억원, 비디오용 3백50억원, TV용 1백40억원 등 총 5백40억원에 달하는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했다. 이는 올들어 「또또와 유령친구들」만이 제작, 상영되는 등 단 한편의 극장판 애니메이션을 생산해 공개 상영하기조차 버거운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의 현실에 비춰 무시할 수 없는 수준이다.

 한국 애니메이션 업계는 전세계 제작량의 65%를 하청생산하고 있다. 하청생산 수출액만도 약 9천2백만달러(96년)로 곧 1억달러를 돌파할 전망이다. 30여년간 지속해온 하청생산으로 애니메이터 2백명 규모의 제작능력을 지닌 메이저급 프로덕션이 10여개, 중소 프로덕션 1백여개 등 2만여명의 전문인력을 보유하고 있다. 제작능력만큼은 수준급인 것이다.

 그러나 양질의 제작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시장에 내놓을 만한 국산 애니메이션은 찾기 힘들다. 이는 기획력이 취약한 데서 오는 결과로, 몸은 있으나 머리가 없는 셈이다. 머리가 없으니 고유의 캐릭터가 탄생할 리 없고, 도전적인 기획을 시도할 재원조달능력도 취약한 게 현실이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아기공룡 둘리」가 해외(독일)에 수출되고, 일부 대기업들이 TV용 애니메이션 「녹색전차 해모수」 「영혼기병 라젠카」를 제작해 시장에 선보이는 등 국산 애니메이션의 성공 가능성이 엿보이고 있다. 독자적인 기획, 고유의 캐릭터가 더욱 큰 성공과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 입증되고 있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오랜 하청생산을 통해 형성된 경험을 토대삼아 독특한 기획력으로 승부할 때가 왔다』며 『국내 애니메이션 산업이 재원·기획력·마케팅력 등에서 해외 유수의 국가들에 비해 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틈새시장을 공략할 경우 의외의 결과를 거둘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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