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 및 공정상 문제점
현재 정부 주도로 추진되고 있는 반도체 업종 빅딜은 반도체 분야가 지닌 특유의 기술적 사항들이 거의 고려되지 않고 있는 근본적인 문제를 안고 있다.
반도체는 기초재료인 웨이퍼가 생산 라인에 투입된 후 2개월 이상의 긴 제조 과정과 2백50여 가지의 공정을 거쳐 완성되는 종합 전자부품이다. 그래서 반도체 제조 공정을 흔히 「종합예술」이라 불리는 건축에 비유되며 실제로도 그만큼 많은 장비와 인력이 투입된다.
『수백여종의 공정을 거치면서 미세한 먼지 하나로 인해 발생하는 조그만 에러가 전체 수율을 떨어뜨리고 생산 라인을 한순간에 멈추게 할 수도 있는 것이 반도체 제조 분야의 특성』이라는 것은 반도체 엔지니어들에겐 상식적인 얘기다.
따라서 LG반도체와 현대전자가 반도체 사업 합병을 위한 구체적인 사항에 합의하고 곧바로 라인 조정 작업에 착수한다 하더라도 반도체 분야의 기술 특성상 상당 기간은 각자의 방식대로 제품을 계속 생산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술 조정 단계를 거친 후 실질적인 라인 통합 작업에 착수할 경우에도 길게는 2년 이상의 기간이 소요될 뿐만 아니라 양사의 64MD램 3세대 제품을 동일한 공정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라인당 2천억원 이상의 엄청난 추가 투자가 필요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심지어 일부 엔지니어들은 『현대와 LG의 경우 기본적으로 반도체 설계 및 공정기술은 물론이고 생산설비까지 호환성이 없어 라인 통합에 소요될 기간 및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수도 있으며 근본적으로 라인 통합 자체가 불가능할 지도 모른다』고 우려한다.
반도체 제조 공정의 최고 핵심 장비인 스테퍼만 하더라도 현대전자가 니콘과 ASML장비를 주로 사용하는데 반해 LG반도체는 캐논 장비가 주종을 이루고 있으며 세정·식각·배선 등 각종 핵심 공정에 들어가는 장비들도 서로 호환이 불가능하다.
따라서 현대와 LG의 라인 통합 작업은 일부 설비의 대체 및 보완 수준이 아닌 전면적인 장비 변경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 기간 동안에 발생할 반도체 생산액 차질만도 2조원대에 달할 것이라는 게 반도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이처럼 라인 통합에 따른 각종 기술 및 경제적 문제점들을 고려할 때 현재 생산 라인 중 상당수는 통합 후 실제 가동되지 않는 유휴 설비로 전락해 버릴 가능성이 크며 최근 본격적인 보완 투자가 이뤄지고 있는 16MD램 생산 라인까지 포함할 경우 반도체 합병은 설비 운용 측면에서도 전혀 이득이 없는 선택』이라고 단언한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 판이한 설계 및 공정기술을 단일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의 추가 연구 개발 기간이 소요되며 통합 과정에서 발생할 핵심 연구 인력들의 대거 이탈 현상도 막기 힘들 것으로 양사의 엔지니어들은 입을 모은다.
한두 달 정도의 개발 기간 차이로 시장에서의 성패가 판가름나고 6개월마다 차세대 모델이 등장하는 반도체 업종의 특성상 합병 작업에 따른 이러한 생산 및 개발 기간 차질은 다시 회복할 수 없는 치명타로 작용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국내 전자 산업 전체를 떠받치는 기반 기술이자 최대 수출 품목인 반도체를 첨단 분야의 특성에 맞는 정확한 기술적 검토 없이 단순한 잣대로 그 운명을 결정짓는 것은 너무나도 안이한 발상』이라는 게 국내 반도체업계의 한결같은 목소리다.
<주상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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