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일본영화가 국내 영화시장 문전을 서성이고 있다.
일단 △한·일 공동 제작 영화 △「칸」 「베니스」 「베를린」 「아카데미」 등 4대 영화제 수상작 △한·일 영화주간을 통해 공개된 영화 등으로 수입개방 폭이 제한되긴 했지만, 앞으로 전면개방의 수순을 밟을 것이 분명해보인다. 이로써 한국 영화시장은 세계 모든 나라를 향해 빗장을 열게 됐다.
정부는 일본영화의 한국시장 잠식규모가 2백71억∼2백38억원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일본영화가 약 2천3백84억원에 이르는 한국 영화업 시장규모를 2∼3% 확대시키는 효과와 함께 7∼10%의 시장점유율을 보일 것으로 예상했다. 언뜻 그다지 우려할 만한 수준이 아닌 것으로도 보인다.
오히려 일부 영화업자들은 자신감까지 표명한다. 이는 한국영화의 질과 관련산업 체질이 결코 일본영화에 뒤지지 않는다는 판단에서 비롯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영화는 국내 영화인 몇몇의 머리 속에서 정리되는 「안도와 자신감」만으로 대처하기에는 벅찬 힘을 지녔다. 작년 일본 영화계는 입장객 수가 1억4천만여명으로 한국의 3배, 흥행수입 1천7백72억엔으로 한국의 7.4배(1백엔당 1천원 기준)에 이르렀다.
제작업계도 사정은 마찬가지여서 일본의 장편 극영화 연간 제작편 수는 2백∼3백여편(한국 60여편), 편당 평균 제작비는 3억∼4억엔으로 모두 한국의 3배 이상이다. 한국이 플라이급이라면 일본은 라이트급 수준이다. 그만큼 영화의 펀치력(대외경쟁력)도 차이가 나게 마련이다.
바야흐로 한국 영화계는 그동안 헤비급 복서(미국 할리우드)에 시달려온 데 이어 이제 라이트급 복서(일본)의 강펀치에 유린당할 위기에 처한 것이다.
특히 닛카츠·쇼치쿠·도호 등 일본 3대 메이저 영화사들이 직접 현해탄을 건너오는 경우 문제는 한층 심각해진다. 이들은 자국 내에서 영화 제작·배급·상영을 일괄적으로 관리하는 「블록 부킹 시스템(Block Booking System)」을 사업전략으로 택하고 있는데, 이 시스템이 지리적으로 인접한 한국에서도 실현된다면 한국 영화업계는 총체적인 위기를 맞이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그렇다면 한국 영화업계는 방어능력을 갖추고 있는가. 이 같은 질문에 대해 영화계 인사, 그 누구도 시원한 대답을 내놓지 못했다. 한국 영화계는 △재정능력이 취약하고 △세계시장을 향한 경쟁력이 없으며 △장르가 협소하고 △유통(배급·상영)체계마저 불안하다. 일부 한국 영화업자들은 「한국영화 흥행수입 감소→일본 유통체계의 한국진출→한국에서의 일본영화 블록 부킹 시스템 정착→한국 영화업 자양분 고갈」이라는 시나리오를 예상하기도 한다.
그러나 위기는 노력에 따라 기회로 바뀔 수도 있다. 시장개방은 자연스럽게 「상호 교류」의 폭을 넓혀 놓는다. 상황에 따라 한국영화의 일본시장 역공략 또는 세계시장 진출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질 수 있는 것이다. 한국영화의 경쟁력이 취약함에도 불구하고 무리하게 맞대응하는 것은 자멸을 불러올 수 있다.
따라서 상호 교류 차원에서 한·일 공동 제작 및 배급방식을 이끌어내고, 포구를 아시아를 비롯한 세계시장으로 돌려놓는 전략도 고려해볼 일이다. 상호 교류를 통해 영화 제작·유통시스템 노하우를 배우는 것도 중요한 과제일 것이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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