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시작하며
일본 대중문화의 빗장이 풀렸다. 이는 영상산업에 대한 완전 시장개방을 의미한다. 지난 88년 미국 영화직배사에 영화배급 등을 허용한 이후 만 10년 만의 일이다.
당시에는 제조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논리로 시장개방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다르다. 일부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21세기 한·일 관계를 위해 시장개방이 단행됐다. 따라서 영상산업계에 더 이상의 산업 보호막은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다.
일본 대중문화 개방의 파고는 88년 미 영화직배사들의 대한 진출에 따른 여파와는 무게를 비교할 수 없다. 지근거리에 있는 지정학적 특성 외에도 그들의 엄청난 상업적 발상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 이미 젊은 청소년들은 그들의 문화 상업주의에 푹 빠져 있다. 따라서 정부의 개방일정이 의외로 앞당겨질 경우 애니메이션 등 주요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기반조차 흔들릴지 모른다.
영상산업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문화의 경제화가 시급하다. 문화의 상업화를 촉진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정비가 절실하다. 상업화에 걸림돌로 작용하는 각종 규제들은 서둘러 철폐돼야 한다.
선진 각국은 문화산업 입국을 위해 총력을 쏟고 있다. 미국은 문화산업을 국가의 전략적 기간산업으로 육성한다는 방침 아래 「창조적인 미국」이라는 보고서를 최근 발표했다. 영국은 「쿨 브리타니아」 운동을 펼치며 제2의 도약을 꿈꾸고 있다. 일본도 긴급 제언을 통해 문화의 산업화에 매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의 이러한 일련의 산업육성책 요체는 탈규제정책이다. 지원도 간섭도 하지 않는 것이다. 산업계의 당면과제는 「가장 상업적인 것이 가장 예술적인 것」이라는 세계적인 인식변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하는 것이며, 이를 위해서는 「적과의 동침」도 서슴지 말아야 한다. 메이저사인 컬럼비아 트라이스타가 일본 소니에 넘어갈 당시 일본은 쾌재를 불렀다. 마치 미국의 영화산업이 일본의 손아귀로 넘어온 듯했다. 그러나 컬럼비아 영화사가 만든 영화는 미국영화이지 일본영화는 아니었다. 일본 소니는 단지 미국에 영화제작비만 가져다준 것뿐이었다.
20세기폭스사의 「타이타닉」은 엄청난 돈을 벌어들였다. 그들의 숨은 제작기획은 「한 건 하자」였다. 제작비가 부족하자 그들은 경쟁사인 파라마운트를 스스럼없이 불러들였다. 결국 20세기폭스사의 의도는 성공했다. 가장 상업적이면서도 예술적인 영화를 완성해낸 것이다.
종전의 제작관행과 관습을 타파해야 한다. 제작→유통→소비자로의 흐름을 소비자로부터 출발할 수 있도록 해야 하고, 또 필요하다면 경쟁사의 자본도 끌어들여야 한다. 주먹구구식 사업관행을 버려야 한다. 철저한 상업주의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각오만이 적자생존 경쟁에서 이겨낼 수 있다.
정부는 일본 대중문화가 개방되면 영화와 비디오시장의 각각 7∼10%와 10% 정도를 점유하게 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국내산업의 피해는 더할 것이다. 음반·방송·애니메이션 산업도 강건너 불을 보듯 안심할 상황은 아니다.
정부와 산업계 모두가 서둘러 변해야 한다. 단계적 개방에 따른 남은 시간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 하드웨어적인 것뿐 아니라 소프트웨어적인 마인드까지 철저히 바뀌어야 시장을 지킬 수 있다. 시장을 지켜야만 문화의 정체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철저한 문화의 상업화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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