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 대중문화에 대한 빗장을 풀었다. 정부가 20일 발표한 개방일정에 따르면 당장 일본영화·비디오의 수입이 가능하게 됐다. 정부가 개방에 따른 몇가지 단서를 달기는 했지만 대중문화의 상징인 영화, 그것도 일본영화의 국내상영을 허용한 것은 그 무엇보다도 상징적 의미가 크다 할 수 있겠다.
정부는 예상했던 대로 단계적 개방 방침을 천명했다. 이는 문화·산업계에 미칠 여파를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일부에서는 전면개방의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지만 국민정서를 감안해야 한다는 여론이 앞섰다.
음반·방송·공연분야 등의 개방일정은 앞으로 민간단체인 (가칭)「한일문화교류공동협의회」에서 논의, 결정될 전망이다.
이 협의회의 구성에 대한 구체적인 안은 아직 나와 있지 않지만 양국 전문가들이 같은 수로 참여, 한일 문화교류 정책의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논의할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가 영화·비디오분야를 즉시개방 대상으로 선정한 것은 일단 우리나라 영화가 상대적으로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영화계에서도 일본영화 개방에 대해 몇가지의 전제를 달 경우 우리나라 영화의 승산이 없지 않다는 자신감을 보여왔다.
이를테면 저질 액션·에로영화 등을 거른다면 영화시장에서의 파고는 그다지 높지 않을 것이란 분석이었다. 국제영화제 수상작 및 한·일 공동 제작 영화, 한·일 영화주간 상영 영화 등에 대해서만 수입을 허용키로 한 것은 이러한 맥락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일본영화의 수입추이를 예의주시하며 개방일정의 완급을 조절할 것으로 보인다.
예상 외로 일본영화가 국내 영화시장에서 고전할 경우 정도가 심한 「로망 포르노」를 제외한 전면적인 개방계획이 앞당겨질 수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는 일본 프로테이프 수입에 대해서도 영화와 동일한 원칙을 적용하기로 함으로써 국내업체들의 일본영화 비디오 판권획득을 둘러싼 과열경쟁에 찬물을 끼얹었다.
국내에서 상영된 영화 이외에는 일본영화 비디오의 제작·판매가 사실상 불가능, 영화관에서 상영하지 않는 「비디오 온리」 작품 수입이 어렵게 됐다. 이에 따라 프로테이프 시장에 미칠 일본 비디오의 잠식률은 극히 미미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부의 이번 일본문화 개방과 관련한 단계적 개방조치를 일본당국이 어느 정도 이해할지는 의문이다. 예상보다 규모가 작고 기대했던 개방일정 플랜마저 전혀 언급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업계 일각에서도 정부의 단계적 개방방침에 대해 안도하면서 한편으로는 여전히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것도 바로 개방일정과 관련한 프레임이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는 데 있다.
정부는 한일문화교류공동협의회에서 협의, 결정된 개방일정을 수용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개방일정을 양국의 민간단체에 맡기기보다는 정부가 자신감을 갖고 투명하게 개방일정을 밝혀야 했다는 게 업계의 지적이다.
이와 함께 일본문화 개방에 따른 파장을 최소화하기 위해 발표한 정부의 문화산업 육성대책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과연 얼마나 실효를 거둘 수 있을지 의문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소요재원을 마련하는 것도 문제지만 먼저 문화산업, 특히 대중문화를 바라보는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나오고 있는 것이다.
<모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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