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들어 전세계 비디오·영화 등 영상 제작업계는 최대의 소재로 공상과학(SF)을 선택했고 이를 좀더 사실적으로 묘사하기 위해 컴퓨터그래픽(CG) 특수효과를 이용하고 있다. 이같은 경향은 미국 할리우드 영화제작업계가 주도하고 그 뒤를 다른 나라들이 따르는 형상이며 한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올해에도 최대 성수기인 여름 영화시장의 선두에 「고질라」와 「아마겟돈」이라는 SF물이 있었고, 그 열기는 지난 봄부터 한국 극장가에 선보였던 「딥 임펙트」 「로스트 인 스페이스」 「X파일」 「스폰」 등을 통해 추석과 가을 비디오시장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장대한 CG영상을 선보인 「타이타닉」도 영화흥행에 이어 비디오시장을 장기간 점령할 태세다.
그렇다면 왜 SF와 CG인가.
세계 영상제작업 선두집단인 할리우드는 90년대로 들어서면서 「적」을 잃어버렸다. 동유럽권의 변화물결에 따라 더이상 1950년대부터 단골메뉴였던 냉전체제를 영화에 반영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 대안으로 등장한 것이 중동 테러집단의 준동이라는 시나리오였다. 그러나 선·악 대결구도 아래 몇몇 영웅들이 총을 들고 싸우는 기본 뼈대가 관객들에게는 「식상한 영화」로 비쳐질 뿐이었다.
이에 할리우드가 눈을 돌린 곳은 우주공간·미래사회·선사시대·재난 등이었다. 이를 스크린 위에 사실적으로 옮겨 관객들의 흥미를 자극하는 데 걸맞은 장르가 SF였고 그 영상 제작방식은 CG의 힘을 빌려왔다. 특히 현란한 눈속임 CG영상이 신세대 젊은이들의 입맛에 잘 맞아떨어지면서 성공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SF물의 성공 가능성은 이미 지난 77년 시장에 나온 조지 루카스 사단의 「스타워즈」를 통해 입증됐다. 「스타워즈」는 수익규모에서 세계 영화시장 4위 규모인 7억8천3백만여달러, 미국시장만으로는 역대 2위인 약 4억6천1백만여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또한 후속작인 「제국의 역습」(80년)은 세계시장 5억1천2백만여달러(14위), 미국시장 2억9천만여달러(9위)를 벌어들였다. 이어 3편인 「제다이의 귀환」(83년)도 세계 5억7천2백만여달러(10위), 미국 3억7백만여달러(7위)의 수익을 올리는 등 「스타워즈」 시리즈는 전세계 최대의 히트작이되었다.
그런데 당시에는 블루프린트 합성과 미니어처·인형 등의 특수효과 기술이 사용됐다. 장르의 성공 가능성을 확인했을 뿐 CG가 접목되지는 않았던 것이다. 스티븐 스필버그의 82년작인 「E.T.」도 상황은 마찬가지로 세계에서 7억4백만여달러, 미국에서 4억여달러의 흥행수익을 기록했지만 본격적인 CG영상을 선보이지는 못했다.
CG가 SF물 창작의 최대 무기로 각인된 것은 지난 91년 최대 히트작인 「터미네이터2:심판의 날」이다. 이 영화는 CG를 이용한 모핑(형태변형)기법을 선보이면서 전세계 영화업계와 관객들을 새로운 재미와 영상에 눈뜨게 했다. 결국 「터미네이터2」는 세계 영화시장에서 5억1천6백만여달러(13위)의 돈을 거둬들였다.
이후 SF와 CG는 블록버스터(대작영화)의 표상이 됐다. 세계 영화시장에서 93년작 「쥬라기공원」이 9억2천만여달러(2위), 97년작 「잃어버린 세계:쥬라기공원2」가 6억1천4백만여달러(8위), 역시 97년작 「멘 인 블랙」이 5억8천6백만여달러(9위)를 쓸어갔다.
특히 CG의 힘을 빌려 웅장한 영상을 선보였던 「타이타닉」(97∼98년)은 세계시장에서 무려 18억6백여만달러(1위)의 수익을 올리면서 CG특수효과의 힘을 입증하고 있다.
98년은 바야흐로 SF 및 CG 전성시대를 맞이한 느낌이다.
연초 「타이타닉」의 성공에 이어 「아마겟돈」이 4억6백만여달러, 「딥 임펙트」가 3억2천6백만여달러, 「고질라」가 3억1천7백만여달러를 벌어들여 98년 세계 영화시장 흥행수익 1∼4위를 점령했다. 또 「X파일」이 1억4천4백만여달러로 15위, 「로스트 인 스페이스」가 1억2백만여달러로 20위의 수익을 기록했다.
한국 영상업계도 뒤늦게나마 CG영상의 중요성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지난 95년 「은행나무침대」가 CG를 이용한 모핑 및 합성 영상을 선보이면서 흥행에서 크게 성공한 이래 「넘버3」를 비롯한 여러 영화들에 CG가 채용됐다. 이후 올해에는 「퇴마록」이라는 본격 CG영화가 개봉돼 흥행하고 있고, 앞으로 「무한 육면각체의 비밀」 등의 영화에 많은 CG가 채용될 예정이다. 한국영화업계도 CG 블록버스터의 길을 택한 것이다.
그러나 그 규모면에서는 아직 미미한 수준이다. 일단 영화제작비 규모에서 영세한데다 영화 CG 전문업체들의 기반도 취약하다.
실제 미국 할리우드의 영화제작비가 편당 2억달러를 훌쩍 넘어선 반면 우리는 많아야 편당 1백50만달러(20억원대, 1천3백원 기준)에 지나지 않는다. 또 지난 95년을 전후로 활동을 본격화했던 한국의 CG 전문업체들도 IMF 경제한파의 영향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TV광고 CG 전문업체로서 다져온 역량을 기반삼아 영화에 뛰어들었던 (주)비손택이 최근 부도가 난 데 이어 30억원 상당의 CG영상 합성장비를 구비하는 등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던 LIM도 모기업의 부도여파로 위축된 상태다. 현재는 미디아트·제로원픽쳐스·DGFX 등의 업체들이 CG 전문업체로서 그나마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관련업 전반이 어려움에 휩싸이고 있다.
하지만 한국영화 평균제작비가 10억∼15억원대로 상승하고 많을 경우 20억∼25억원까지 투입되면서 영화부문의 CG 수요가 늘고 있는데다 최근들어 한국영화를 찾는 관객들의 발길도 지난 90년 초에 비해 20∼23% 정도 증가하는 등 발전의 여지는 남아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특히 본격적인 CG영화이자 한국형 블록버스터로 평가받는 「퇴마록」(폴리비전픽쳐스)이 흥행에서 성공사례를 남기면서 한국 영상제작업계에 『노력하면 성공한다』는 희망을 던져주고 있다.
〈이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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