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전방 저항판 검출기」가 우주생성 과정을 밝혀내기 위해 건설되는 세계 최대규모의 입자 가속기에 장착된다. 「유럽핵입자물리연구소(CERN)」는 이달 초 프랑스와 스위스 국경지대 지하 수십m에 건설하는 초대형 터널형 입자 충돌가속기(LHC)에 한국검출기연구소(소장 박성근·고려대 교수)가 순수 독자기술로 개발한 검출기를 장착하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CERN의 미셸 델라 네그라 프로젝트 책임자는 『이 검출기를 시험 가동한 결과 성능이 매우 우수했다』며 『앞으로 4백50여개의 검출기를 장착해 입자충돌 시험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미국·일본·한국 등 세계 50여개 국이 참여하고 있는 LHC는 40억달러(약 5조원)의 건설비용이 투입되며 둘레가 27㎞에 이르는 초대형 프로젝트로 오는 2005년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러면 세계의 물리학자들이 이렇게 막대한 돈을 투입하며 심혈을 기울이는 입자 가속기란 무엇일까. 물리학자들은 일반인이 상상할 수 없는 엉뚱한 생각을 한다. 즉, 「우주는 어떻게 만들어졌을까」하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것이 바로 「빅뱅」 이론이다.
이 이론의 골자는 약 1백50억년 전 우주는 티끌보다 작은 입자였다는 것. 이 입자는 모든 것을 녹일 정도로 뜨거웠는 데 굳이 온도를 말하라고 하면 약 1천억조 도. 이 뜨거운 입자가 어느 순간 대폭발을 일으키며 팽창하기 시작했다는 것이 빅뱅이론이다.
물리학자들은 우주를 만든 원시물질을 「쿼크」로 명명하고 실험을 통해 이를 발견해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러한 쿼크들이 어떻게 질량을 얻는지를 알아내는 것. 여기에는 힉스(Higgs)라는 또 다른 물질의 존재가 필요하다. 가속기 사업은 이같이 태초의 상황을 연출, 아직 가설 단계인 힉스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작업이다.
가속기는 7조eV(전자볼트)를 가진 양성자(중성자와 함께 원자핵을 이루는 물질. 세 개의 쿼크로 구성돼 있다)를 빠르게 돌려 양쪽에서 충돌시키는 것이다. 가속된 양성자의 속도는 총알의 1만배인 시속 10억㎞. 속도가 빠른 만큼 힘이 세다. 1초에 가속기를 1만 번이나 도는 양성자 다발은 1억 분의 1초마다 충돌을 거듭하며 태초의 우주를 재현, 수많은 입자파편을 만들게 된다. 이에 따라 LHC의 연구는 양성자가 깨지면서 만들어내는 힉스 입자의 검출에 성패가 달려있다.
우리나라 물리학계도 이 사업에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고려대 검출기연구소(소장 박성근 교수)를 중심으로 11개 대학이 공동으로 전방 저항판 검출기를 제작, 이번에 CERN으로부터 그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이다.
이 검출기는 앞으로 힉스입자 검출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궁극적으로 힉스 입자가 어떻게 질량을 갖는지를 밝혀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한편 패널형으로 만들어진 이 검출기 4백50여개를 펼치면 약 3천 평에 달한다. 고려대 검출기연구소는 우리 나라에서 제작한 검출기가 최근 제네바 본부로부터 그 성능의 우수성을 인정받았기 때문에 내년부터 양산에 들어간다는 계획이래 최근 이에 필요한 예산지원을 과학기술부측에 공식적으로 요청했다고 밝혔다.
입자 가속기 사업은 단순하게 순수 물리학의 궁금증을 해소하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CERN이 인터넷 검색시스템인 웹을 개발, 전세계에 보급한 것처럼 이 사업 또한 앞으로 다양한 파생기술들을 쏟아낼 것으로 기대된다.
박성근 교수(42)는 『우선 입자 검출기만해도 이른 시간내에 대용량 자료를 송수신하는 광통신 기술이나 3차원 영상처리 기술 등 최첨단 기술이 집약돼 있어 앞으로 이를 원격탐사·의료·환경보호·통신·우주개발 등에 응용할 경우 무궁무진하게 기술확산이 이뤄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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