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GIS서비스 시대

구불구불한 비탈길이 이어지는 강원도 인제군의 어느 산골.

 무쏘를 몰고 앞서가던 김대균씨(38·강서보건소 진료의사)는 갑자기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창밖을 내다보니 귀신에 홀리기라도 한 것처럼 30분 전에 지나친 길이 또다시 펼쳐지고 있지 않은가.

 자동차 마니아인 김씨는 주말이면 지도 상에 없는 길, 즉 「오프로드(Off Road)」 탐험을 즐긴다. 장교 출신으로 독도법을 익혀둔 그는 2만5천분의 1 지형도만 있으면 어딜 가든 안심이다. 오늘은 천리안에서 만난 동호인들과 함께 원통에서 인제를 거쳐 서울로 되돌아오는 코스를 잡았다. 하지만 초행길인데다 산세가 워낙 험해 지도를 읽기가 쉽지 않다.

 날이 저물자 김씨는 모험을 포기하고 카TV의 파워버튼을 누른다. 인 슬라이딩 타입으로 접혀 있던 5.5인치 화면이 눈앞에 떠오르자 그는 무선 리모컨으로 차량항법시스템(CNS : Car Navigation System)을 작동시킨다. 곧이어 무쏘의 위치가 화살표로 표시된 지도가 화면 위에 떠오른다.

 잠시 주변의 지형지물을 살펴본 김씨는 무선 리모컨을 이용해 목적지를 서울 삼성동으로 설정하고 「길찾기」라는 메뉴를 선택한다. 최단거리 주행선이 화면에 표시되는 것을 보자 그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3백m 전방에서 우회전하세요」라는 CNS 도우미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는 손을 들어 뒤따라오던 차량에 OK 사인을 보낸다.

 생활 속의 GIS시대가 성큼 다가오고 있다. GIS(Geographic Information System : 지리정보시스템)란 디지털 전자지도를 기반으로 한 첨단 정보시스템.

 흔히 정보사회의 꽃으로 불리는 GIS 서비스가 일상생활 속에 뿌리를 내리려면 우선 인프라부터 구축돼야 한다. 정부가 추진하는 국가지리정보시스템(NGIS)이나 지방자치단체의 도시정보시스템(UIS)이 토대가 돼야 한다는 뜻. 그래야 가스·난방·도로교통 등 공공기관 주도형의 편리한 GIS 서비스들이 생겨나고 뒤따라 생활 속의 GIS 서비스도 활기를 띠게 된다.

 북미와 유럽에서 삶의 질을 높여주는 갖가지 GIS 서비스들이 대중화한 것도 알고 보면 60년대부터 기본 토양을 잘 다져 놓았기 때문. 캐나다에선 어민들이 북극의 결빙 상태를 체크해보고 고깃배를 탄다. 런던에 가면 「탐험가(Pathfinder)」라는 낭만적인 이름이 붙어 있는 2만5천분의 1 전자지도에서 오솔길까지 찾아내는 시민들을 만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미국에서는 폭발이나 테러가 일어났을 경우 구조대원들이 마치 영화 「볼케이노」 속의 토미 리 존스처럼 모니터 상에서 정확한 사고지점을 알아낸 후 신속하게 움직인다.

 우리나라의 경우는 몇년 전만 해도 GIS의 불모지였다. 정부 차원의 인프라 구축이 시작된 것은 마포와 대구의 가스참사를 계기로 NGIS 계획안이 마련된 95년부터다. 이에 따라 서울·부산·대구·광주를 비롯한 10여개 지자체가 UIS 도입을 추진중이고, 한국가스공사·대한지적공사·한국지역난방공사·도로교통안전협회 등 공공기관도 경쟁적으로 GIS 도입에 나서고 있다. 국립지리원은 지난 1일 원하는 사람 누구에게나 수치지도를 팔겠다고 선언해 GIS업계의 주목을 끌었다.

 요즘에는 이같은 인프라 구축과 맞물려 생활 속의 GIS 서비스도 속속 등장하고 있다. 위의 에피소드처럼 위급할 때 길라잡이 역할을 해주는 CNS가 그 대표적인 예.

 CNS란 지리정보시스템에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 위성위치측정시스템)를 연동시킨 형태. 이를 이용하면 지구 상공을 선회하는 GPS 위성이 보내오는 데이터를 수신해 주행중인 차의 위치를 연속적으로 모니터 위에 표시해주고 목적지까지 가는 가장 빠른 길도 보여준다. 영화 「어쌔신」에서 비밀요원에게 쫓기다가 차량단말기의 지도를 보고 가까운 택시회사로 숨어들었던 실베스터 스탤론도 알고보면 CNS 덕분에 위기를 모면한 것.

 시중의 자동차용품 전문숍이나 CNS 개발업체 대리점에 가면 이런 첨단 장비를 살 수 있다. 차종에 무관하게 장착할 수 있는 「인터로드2(쌍용정보통신)」는 1백만원을 호가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마니아 사이에 호평을 받고 있는 국산 CNS 단말기.

 아예 새 차를 살 때 CNS 단말을 옵션으로 달아도 된다. 대우 체어맨, 삼성 SMV 525, 현대 다이너스티 등 아직은 고급 차종을 위주로 주문이 가능하다. CNS를 장착한 차량은 기껏해야 4천대 수준. 하지만 인터로드 개발을 추진한 쌍용정보통신 ITS팀 정윤기 팀장은 『쾌적한 운전공간에 대한 소비자들의 욕구와 자동차업체의 마케팅 전략이 맞물린다면 멀지않아 이웃 일본처럼 CNS차량 1백만대 시대가 올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본다.

 한편 움직이는 차량의 위치를 자동으로 쫓아가 전자지도 상에 표시해주는 자동 차량위치 추적시스템(AVLS) 서비스도 늘어났다. AVLS 하면 건설교통부가 추진중인 종합물류정보전산망이나 대형 운송업체의 물류관리시스템만 떠올린다. 하지만 예상 외로 일반인이 혜택을 누릴 만한 서비스도 많다.

 ITS인테크사가 시범서비스중인 「부르미」가 좋은 예. 이 회사는 무선데이터망과 연계한 DB시스템과 종합지령실을 구축하고 GPS 단말기가 부착된 택시에 실시간으로 교통정보를 제공해준다. 승객이 080-0082-0082로 전화를 걸면 이 회사 종합지령실에서 가장 가까이 있는 택시를 찾아내 고객의 위치정보를 알려주는 것. 단말기 가격과 서비스 요금이 만만치 않아 택시업계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 하지만 무료전화를 이용하는 승객 입장에선 밑져야 본전이다. 현재 송파와 강동지역을 중심으로 약 1백30대의 택시가 GPS 단말기를 장착하고 있으니 시험을 해봐도 좋다.

 인터넷과 PCS폰을 연동시킨 기발한 서비스도 등장했다. 018이나 019 PCS폰을 가진 사람의 위치를 인터넷으로 검색한 후 원한다면 문자메시지를 보내주는 인포뱅크사의 위치추적서비스가 바로 그것. 현재 자동차 AS업체, 물류회사, 콜택시 업체 등 3개사를 대상으로 시범서비스중이지만 멀지않아 개인용 서비스도 나올 전망이다.

 이 회사는 미취학 아동이나 치매 노인의 위치를 식구들이 직장이나 집에 앉아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서비스도 구상중이다. 핸드폰 소유자가 일정 구역을 벗어나는 순간 신호음을 보내주기 때문에 일단 인터넷에 접속만 하면 다른 작업을 하면서도 안심할 수 있다는 게 인포뱅크측의 설명이다.

 이 회사는 또 고속버스 운전기사가 차량에 PCS폰을 설치하면 톨게이트를 통과할 때 역사의 도착안내판에 메시지가 들어오는 서비스도 계획중이다. H터미널과 계약이 성사되면 고속버스 대합실에서도 김포공항처럼 마중나간 사람의 도착시간을 모니터 상으로 체크해볼 수 있게 된다는 것. 이처럼 인터넷과 PCS를 연결시킨 위치추적서비스들은 1백만원을 웃도는 GPS 단말기를 구입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장점이다.

 한편 CD롬 전자지도도 최근 봇물을 이루고 있다. 지오윈의 「지오메카」와 열림정보통신의 「백두대간」은 특히 눈길을 끄는 제품. 이중 지오메카는 올해 열린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전시회(SEK)에서 9백장, 컴덱스코리아쇼에서 2백장 등 전시회를 통해서만 1천장 이상이 팔리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알고 보면 한컴오피스97 버전의 서비스팩 안에도 「지오로드」라는 이름의 전자지도가 들어 있다. 번들제품이긴 하지만 주요건물이나 목적지까지의 최단거리 검색, 약도 그리기 등을 해볼 수 있다.

 지도가 지구 상에 처음 등장한 것은 BC 3백년 전. 통치권자가 세금을 거둬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생겨난 지도는 전쟁을 치르기 위한 군사지도와 도시건설을 위한 경제지도로 흐름이 바뀌어 왔다. 이제는 GIS와 정보통신기술의 결합으로 탄생한 디지털지도 서비스들이 우리의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주고 있는 셈이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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