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침술과학

새끼 발가락에 침을 놓으면 머리 뒤쪽에 있는 시각피질(비주얼 코르텍스)을 통해 그 자극이 눈으로 전달돼 시력이 좋아진다는 사실을 한 재미 과학자가 과학적으로 입증해 큰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의 과학전문지 「디스커버」 9월호는 침술이 뇌에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규명한 재미과학자 조장희(62, 캘리포니아대 교수) 박사의 연구결과를 그의 사진과 함께 대대적으로 소개했다.

조 박사는 눈에 불빛으로 자극을 준 뒤 머리 뒤쪽에 있는 시각피질의 활성부위를 기능 자기공명촬영장치(fMRI)로 촬영한 후 이를 침술에서 시력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 새끼 발가락쪽 발등에 침을 놓았을 때 시각피질의 활성부위와 비교했다.

실험결과 눈에 빛으로 자극을 주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끼발가락에 침을 놓았을 때에도 뇌의 시각피질이 활성화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는 침술이 뇌와 관계없이 질병에 대한 치료효과를 내는 것으로 알고 있던 기존의 학설을 완전히 뒤엎는 것이기 때문에 국내외 학계에서 비상한 관심를 보이고 있다.

조 박사는 『침술의 효과를 첨단 전자장치로 확인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중요하지만 앞으로 이를 응용하면 뇌 기능 등 신경과학 연구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더욱 큰 의미가 있다』고 지적했다.

인체 각 부위에 침을 놓고 그 자극이 신경계통을 타고 뇌에 전달되는 현상을 사진으로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을 이제 전세계적으로 공인받은 만큼 그동안 전인미답의 신비한 영역으로 남아있던 뇌의 기능에 대한 연구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조 박사의 연구성과는 전적으로 첨단 전자영상진단장치인 기능 자기공명촬영장치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이 기계를 이용하면 뇌와 인체의 각 장기간 신경망을 통한 극미량의 자극도 선명한 영상으로 촬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기공명촬영장치(MRI:Magnetic Resonance Imaging)는 대부분의 원자가 자기장이 있을 때에는 자석처럼 움직인다는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분자의 화학적 특성연구에 주로 활용됐다. 그후 MRI는 양성자(프로톤)를 검출할 때 영상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임상진단용 장비 분야로 그 응용분야가 확대됐다.

MRI는 또 90년대 들어 혈액 내부에서 기능적으로 생성된 산소의 변화를 검출해 뇌의 미세한 작용까지 영상화할 수 있게 되는 등 그 성능이 크게 향상됐다. 이를 특별히 기능 자기공명촬영장치(fMRI)라고 부른다. fMRI는 현재 인간의 뇌를 1㎜의 작은 부분까지 선명한 영상으로 찍을 수 있는 탁월한 성능 때문에 최근 CT(Computed Tomography), PET(Positron-emission Tomography) 등과 함께 20세기를 대표하는 전자의료진단장비로 평가받고 있다.

한편 조장희 박사가 이번 실험에 사용한 fMRI는 그 성능이 2.0테슬러(자장의 세기)로 현재 국내 종합병원에 보급되어 있는 0.5 또는 1.0테슬러급 장비에 비해 영상의 선명도가 2~4배 정도 우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 박사는 지난 62년 서울대 전자과를 졸업한 후 스웨덴 웁살라대학으로 유학해 전자물리학 분야 박사학위를 취득하자마자 CT와 MRI 연구의 메카로 알려진 미국 캘리포니아대 방사선 물리학과 교수로 스카우트되는 행운을 안았다.

그후 CT와 MRI 분야 세계 최고 연구그룹의 일원으로 활동하면서 지금까지 MRI 관련논문만 1백여편을 국제 저명 학술지에 발표하는 등 한국인 출신 과학자로서 가장 큰 성공담을 엮어내고 있다.

조 박사는 또 지난 78년부터 지난해까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전자, 전기공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국내에서도 수많은 제자를 배출했으며 최근 광주과학기술원 석좌교수로 내정됐다.

그는 『앞으로 한달에 한번씩 미국 캘리포니아대학과 한국 광주과학기술원을 오가며 첨단 fMRI를 이용해 침술이 뇌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깊이 연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수천년의 역사를 가진 침술의 신비가 하루 빨리 과학적으로 입증돼 더욱 공정한 평가를 받게 되기를 기대해본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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