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지령 3000호 기념] 전자산업 발전과 함께한 "전자신문"

「21세기 정보대국으로 도약하기 위한 발판 마련.」

전자신문 창간호부터 지령 3000호까지 나타난 국내 전자, 정보통신산업 발전사는 이렇게 함축할 수 있다. 이는 전자신문 창간호 머리기사 제목이 그대로 대변해준다. 「화려한 개막∥전자혁명시대」 「전자를 아는 자만이 새 시대에 살아남는다」가 그것이다. 전자신문은 16년전부터 벌써 21세기 정보사회를 예측하고 이에 대한 대비를 촉구한 것이다.

전자신문 창간 시기인 82년 정부는 전자산업이 우리 산업을 좌우할 중요한 산업이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전자공업진흥기금을 조성하기 시작했고 86년에는 전자산업 중장기 발전전망까지 수립해 양적팽창에 주력했다. 물론 관련법률인 공업발전법, 프로그램보호법, 소프트웨어개발촉진법 등을 86, 87년 제정해 팽창기반을 조성했다. 뿐만 아니라 83년에는 범정부차원에서 정보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천명, 초등학교부터 컴퓨터 보급에 나서는 등 전자산업 기반확충에 주력했다. 특히 88서울올림픽은 우리나라 전산망사업을 비약적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90년대 들어서는 「정보화」라는 용어가 화두였다. 기업은 물론 정부에서도 정보화를 앞당기기 위한 질적인 변화를 추구한 시대였다. 정부도 이에 따라 95년 국가적인 정보화 기반구축 차원에서 「정보화촉진법」을 제정했고 97년에는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조치법」을 만들었다. 특히 역대 대통령들의 정보화에 대한 의지도 강했다.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대통령으로 이어지면서 정보화 의지는 한층 강해졌다. 현재의 김대중 대통령은 취임식에서 21세기 정보대국론을 펼 정도로 정보화 확산 의지가 강하다.

산업분야별로 보면 부침의 연속이었다. 80년대를 주도한 산업은 가전산업이었지만 90년대 들어서는 초반에 컴퓨터, 후반에는 정보통신산업이 전체 산업을 주도하고 있다. 이러한 주도산업의 변화 추이는 그대로 사회상을 나타내고 있기도 하다.

가전산업은 80년대 전자산업 수출을 이끌어 지난 87년 전자산업 수출이 1백억달러를 돌파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한때는 일본에 이어 가전대국으로 지칭될 정도였다. 이러한 가전산업도 88년 서울올림픽을 정점으로 점차 위축되기 시작해 90년대 들어서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80년대말 주요 제품의 보급률이 1백%에 육박할 정도로 내수 포화상태에 달한데다 미국, 유럽연합(EU) 등 선진국들이 한국산 컬러TV에 대해 반덤핑 관세를 부과하는 등 무역장벽으로 제동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맨손으로 「한강의 기적」을 이룬 국가답게 가전업체들은 그냥 당하고만 있지 않고 미국, 영국, 필리핀 등에 현지공장을 설립하는 등 「해외로 해외로」를 외치며 세계화를 추진했다. 또한 가전과 컴퓨터, 가전과 통신을 접목한 새로운 정보가전제품들을 속속 개발하는 등 신규수요 창출에 나서고 있다.

80년대 수출을 가전제품이 주도했다면 90년대에는 반도체가 주도했다고 할 수 있다. 「산업의 쌀」이라고 불리는 반도체는 85년 2백56k D램과 64k S램 개발을 시작으로 87년 1M D램, 89년 4M D램을 각각 양산하면서 반도체 강국인 일본을 추격했다. 90년에는 16M D램을 개발해 세계 1위를 고수하던 일본과 동등한 기술수준을 확보했으며 92년에는 일본보다도 먼저 64M D램을 개발하는 개가를 올리기도 했다.

이러한 앞선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는 90년대 중반까지 우리나라 수출신장을 주도한 효자상품 역할을 톡톡히 했다. 세계 반도체 경기의 호황으로 우리의 전자산업 수출은 95년 4백억달러를 달성하는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87년 1백억달러를 달성한 후 불과 8년만에 네배로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96년말부터 D램 가격이 폭락세로 반전하면서 급격히 냉각되기 시작해 97년에는 전년대비 마이너스성장이라는 고배를 마시기도 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반도체 생산업체들의 감산 단행으로 최근 가격이 회복세를 보이는 등 세계 반도체시장이 한국에 의해 좌지우지됨을 증명해주고 있다.

반도체산업을 꽃피운 것은 컴퓨터산업이다. 80년대 초반 8비트 애플컴퓨터 등장으로 발아하기 시작한 개인용컴퓨터(PC)산업은 80년대 중반 탄생한 16비트 IBM PC 호환기종이 봇물을 이루면서 개화기를 맞았다. 특히 286컴퓨터가 교육용 컴퓨터로 확정되고 86년 행정전산망 구축계획까지 나오면서 PC붐이 일어나기도 했다.

행정전산망 구축계획은 90년대 기업에 네트워크 구축붐을 일으켰고 여기에 국경을 허무는 인터넷이 등장하면서 산업뿐 아니라 사회전반에 엄청난 변화를 몰고 왔다. 대학간의 연구를 활성화하기 위해 보급되기 시작한 인터넷은 불과 수년만에 전세계에 네트워크를 구성하면서 이용자수가 1천만명을 넘어서는 등 산업, 문화기반을 근본적으로 재구축해야 하는 상황을 만들고 있다.

90년대 후반 전자산업을 이끌고 있는 정보통신부문은 80년대 초반만해도 청색전화든 백색전화든 보유만 하면 「부」를 상징할 정도로 보급마저 미미했다. 하지만 83년 팩시밀리가 본격 보급되면서 사무혁명을 가져왔고 87년에는 전화 1천만 회선을 돌파하는 등 전화의 보급이 1가구당 1개 꼴로 정보통신 기반을 갖추어 갔다. 또 그동안 우편배달 중심으로 운영돼왔던 체신부가 95년 국가의 1백년 앞을 내다본 획기적인 변신으로 「정보통신부」로 새롭게 탄생해 정보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 첫 작업으로 부호분할다중접속(CDMA)방식의 이동전화를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했고 이로 인해 국내업체들이 세계 이동전화시장을 석권하고 있는 모토롤러를 국내에서만큼은 맥을 못추도록 했다. 정부가 독점해오던 통신사업을 민영화한 것도 우리나라 정보통신산업을 한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됐다. 92년 제2이동통신사업자 선정을 시작으로 97년 PCS와 시티폰, 무선호출기 등 27개 민간사업자가 선정됨으로써 통신산업의 춘추전국시대가 도래했다. 무선호출기나 휴대전화가 등장한 것은 83, 84년이지만 본격 보급되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이고 이제는 이들 정보통신제품이 필수품화할 정도가 됐다.

연구개발 측면에서는 85년 한국전자통신연구소(ETRI)가 설립되면서 활기를 띠었다. 우리나라 전자, 정보통신기술 개발의 메카로 대덕연구단지도 조성돼 전전자교환기인 TDX, 중형컴퓨터인 타이컴 등을 우리 손으로 직접 개발하기도 했다.

90년대 전자, 정보통신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국경을 초월한 글로벌기업들의 약진과 거대 다국적기업간의 인수, 합병이 광범위하게 진행되면서 공룡기업들이 대거 등장, 글로벌화가 급진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글로벌화는 외국기업뿐 아니라 우리나라 기업들에도 큰 영향을 미쳐 외국의 유명업체를 인수합병하는 사례도 많았다.

특히 무궁화위성 발사를 계기로 본격적인 위성방송시대가 열렸는가 하면 우리 기술로 제작된 우리별 발사 등 본격적인 위성시대에 진입하기 시작했다. 이로써 우리나라가 21세기 정보대국으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은 마련된 셈이다.

<김병억, 이중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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