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전업계, 러시아 외채 지불유예 "불똥"

지난 17일 전격적으로 발표된 러시아의 외채 지불유예 조치는 가뜩이나 궁지에 몰리고 있는 국내 가전업계를 막다른 골목길로 몰아가고 있다.

삼성전자, LG전자, 대우전자 등 가전3사는 급작스런 러시아의 지불유예 조치로 신용채권을 취합하는 등 피해정도 파악과 대책마련에 분주해 하면서도 직접적인 피해액은 그리 많지 않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러시아가 그동안 수회에 걸친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상반기 내내 시장사정이 좋지 않아 거래규모가 예년의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전3사는 이번 사태로 올 한해는 헛장사를 했다는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는 한편 장기적으로는 가뜩이나 어려운 상황에서 수출전선에 적지않은 타격을 받을 것이라는 위기감마저 팽배해지고 있다.

러시아의 지불유예 조치로 전자3사의 직접적인 피해는 아직 정확하게 파악되지 않았지만 아직까지 회수하지 못한 1억달러 미만의 수출신용채권 정도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3사가 그동안 러시아와 거래한 규모는 5억달러를 약간 상회하지만 현지 딜러들과는 대부분 현금과 단기신용으로 거래했기 때문에 미수채권 규모는 1억달러에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 3사 관계자들의 말이다.

그러나 이 미수채권도 모두 달러표시 채권이어서 러시아의 이번 조치가 루블표시 채권에 국한됐기 때문에 상당 부분은 단기간 내에 회수가 가능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또 지불유예 이후 거래처 중 상당수가 도산될 가능성도 있지만 미수액만큼 담보를 잡고 있기 때문에 채권을 회수하는 데는 큰 지장이 없으며 다만 환차손 정도의 피해만 감수하면 될 것이라는 분석이다.

3사는 그러나 이번 사태가 장기적으로는 국내 공장의 가동률을 크게 떨어뜨려 상반기에 겨우 달성한 흑자기조를 무너뜨리게 될 계기로 작용한다는 것은 우려하고 있다.

국내 업계는 미국과 유럽시장이 올들어 지속적인 호조를 누리고 있지만 이 시장은 현지생산, 판매체제가 구축돼 국내 공장의 가동률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되지 않고, 동남아 시장마저 외환위기로 시장이 50%나 축소돼 중남미와 러시아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매우 높은 실정이다.

국내 3사의 러시아 수출액은 상반기 동안 5억달러 정도로 전체 30억달러의 16.7%에 달할 정도로 비중이 높은 지역이다. 그것도 러시아 시장이 예년의 절반 정도로 크게 줄어든 상태에서였다. CIS지역 전체를 합친다면 국내 업계의 수출의존도는 20%를 훨씬 상회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3사는 지난달부터 러시아 시장경기가 되살아나고 있어 하반기에는 최소한 7억달러 이상의 수출실적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으나 이번 지불유예 조치로 물거품이 된 실정이다. 3사는 이번 사태로 러시아에서만 최소한 3억달러 이상의 차질을 빚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가전3사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러시아에서 발생될 3억달러 이상의 수출공백을 메울 수 있는 시장이 없기 때문에 매출손실은 물론 그만큼 국내 공장의 가동률을 떨어뜨릴 것이다는 점이다. 이럴 경우 유휴설비 및 인력으로 인한 비용상승과 얼마가 될지 모를 미수채권 발생 등으로 하반기에는 적자반전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더욱이 올해 연간 7억달러를 상회할 것으로 기대했던 러시아를 제외한 CIS지역 수출액도 이번 러시아사태로 절반 정도로 줄어들 공산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실정이다.

CIS지역 국가들은 러시아와의 경제거래 규모가 50% 정도에 달하는 만큼 러시아로 인해 50% 정도의 시장위축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3사는 그러나 이번 사태의 영향이 러시아와 CIS지역에 국한된다면 비록 적자를 보더라도 대비책을 마련할 수는 있으나, 만약 그나마 수출호조를 누리고 있는 중남미나 중국 등 타지역으로 확산된다면 유사이래 최대 위기를 맞을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유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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