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이 보인다] 일기예보

「지리산-서울, 경기-강원, 충청-전라-충청-서울, 경기」.

지난달 말부터 한반도 남북을 옮겨다니며 막대한 피해를 끼치고 있는 「럭비공 폭우」의 기세가 좀처럼 꺾이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수해지역은 언제 다시 폭우의 피해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기상청은 강우량을 가늠하지 못한 채 「최고 1백㎜ 이상 비」식의 예보를 반복하는 곤혹감에 시달리고 있다.

부정확한 일기예보에 대한 여론이 극도로 악화되자 정부는 부랴부랴 슈퍼컴퓨터를 도입하겠다는 발표를 내놓기에 이르렀다. 기획예산위원회는 1초에 1천억번에 달하는 부동소수점 연산(1백 기가플롭스)을 처리할 수 있는 슈퍼컴퓨터 도입예산으로 1천3백만 달러(약 1백50억원)를 책정했다고 발표했다.

기상청은 슈퍼컴퓨터 도입을 계기로 우리나라 일기예보의 정확도도 현재의 83%에서 85% 이상으로 크게 높아져 미국, 일본(각 86%), 영국, 캐나다(87%) 등 선진국과 비교해도 큰 손색이 없게 될 것이라고 설명한다.

일기예보가 이루어지는 과정은 크게 3단계로 나뉜다. 즉 지상, 해양 등 광범위한 지역의 기온, 기압, 습도, 풍향, 구름, 강수량, 조류 등 다양한 기상관측 데이터를 수집과정, 이를 각종 예보모델에 따라 분석하는 단계를 거쳐 예보자료를 신문, 방송 등을 통해 일반인에게 알리는 것이다.

현재 국내에는 기온, 기압, 습도, 풍향, 강수량 등 기초적인 기상자료 수집을 담당하는 자동기상관측장비(AWS)가 전국에 걸쳐 약 4백개나 설치돼 있는 것을 비롯해 호우, 우박, 낙뢰 등 돌발적인 기상현상과 태풍을 추적, 감시할 수 있는 레이더가 서울, 부산 등 5곳에, 또 30㎞ 상공의 기압, 온도, 바람, 습도를 측정할 수 있는 고층 기상관측 장비도 제주와 포항 등 2곳에 각각 설치돼 있다.

우리나라의 일기예보를 위해서는 또 중국, 시베리아, 일본, 필리핀 등 주변국은 물론 몽고, 유럽 등 전 지구적 기상정보 수집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기상청은 정지기상위성(GMS)으로부터 하루에 28회, 극궤도기상위성(NOAA)으로부터 4회 등 하루에 총 32회에 걸쳐 구름사진 등 다양한 기상정보를 제공받고 있다.

일기예보의 정확성은 우선 이러한 과정을 거쳐 수집되는 기상 데이터의 질에 달려 있다. 이달 초 지리산 등에서 발생한 돌발성 호우를 전혀 예측하지 못한 것은 기상 레이더망을 촘촘하게 구축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는 실정이다. 기상 레이더는 빗방울, 구름 등에 전자파를 발사한 후 돌아오는 반사파를 분석해 호우, 우박, 낙뢰 등 돌발적인 기상현상을 감시하는 데 탁월한 성능을 발휘하지만 현재 전국적으로 5군데밖에 설치돼 있지 않아 이번에 지리산에서 발생한 것과 같은 돌발성 호우예보에 속수무책이었다는 설명이다.

컴퓨터의 성능도 기상정보의 수집 못지않게 일기예보의 정확성을 결정하는 주요한 요소로 인식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일기예보를 1회 실시하기 위해서는 동쪽의 일본 앞바다에서 서쪽의 티베트고원 그리고 남쪽의 필리핀에서 북쪽의 바이칼호에 이르는 넓은 지역을 가로, 세로 40㎞씩 격자로 분할, 총 1만2천개에 달하는 지점의 기상정보를 모두 계산한 후 이를 표준 기상예측 모델과 비교함으로써 매 1시간 후의 기상상황을 미리 점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기상청은 현재 자체 보유하고 있는 슈퍼컴퓨터 1호기(크레이 2S)와 2호기(크레이 C90)를 완전 가동하는 한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병렬형 슈퍼컴퓨터(T3E)도 임차해 사용하고 있으나 이들 컴퓨터의 계산능력을 모두 합쳐도 우리나라처럼 산악이 많은 지형조건을 가진 국가에서 자주 발생하는 집중호우 등 돌발성 악천후를 예보하는 데에는 역부족이라고 기상 관계자는 말한다. 즉 현재 컴퓨터 시스템으로는 12시간 앞의 기상예보를 위한 데이터 처리에만 7시간30분이 걸리기 때문에 기상예보의 실효성을 거두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내년에 1백 기가플롭스급 슈퍼컴퓨터가 새로 도입되면 동일한 양의 기상정보를 약 1시간 동안에 처리할 수 있기 때문에 일기예보의 속보성과 정확성이 획기적으로 개선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기상 전문가들은 컴퓨터 계산능력이 아무리 향상돼도 변화무쌍한 기상을 정확하게 예측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고 전한다. 예를 들면 현재 가로, 세로 40㎞마다 떨어져 있는 격자간격을 일본 수준인 10㎞로 좁히는 것을 전제로 2일 동안 일기예보를 하는 데 필요한 계산량만도 내년까지 국내에 도입될 기상용 컴퓨터를 다 동원해도 48시간이 훨씬 넘게 걸린다는 설명이다.

정확한 일기예보는 앞으로도 상당 기간동안 「전지전능한 신만이 아는 불가사의한 영역」으로 남아 있을 것 같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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