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전환기 맞은 게임산업 (중);유통구조의 붕괴

게임에 대한 일반인들의 인식이 달라지고 국산게임의 수준이 날로 높아지고 있는 등의 희망적인 흐름과는 달리 국내 게임유통은 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작년 초 소프트웨어 유통업계의 연쇄부도에 휩쓸려 홍역을 치렀던 국내 게임시장은 IMF에 진입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보이다 결국 올들어 용산의 대형 도매상이 부도를 낸 것을 시작으로 에스티엔터테인먼트와 하이콤이 쓰러지는 등 다시 한번 기존 유통시스템의 문제점을 노출했다.

불법복제가 증가한 만큼 정품 수요가 줄고 한정된 인기작품 위주로 판매가 양극화되는 시황속에서 개발사-제작사-총판도매상소매상으로 이어지는 다단계 유통라인과 떠넘기기식 관행은 그렇지 않아도 부실한 유통시스템을 위태롭게 하고 있다.

국산 PC게임의 경우를 보면 전문 개발사들은 최소한 개발비라도 건지기 위해 여전히 미니멈 개런티를 요구하고 있고, 여기에 흥행대작을 잡기 위한 제작사나 총판의 과당경쟁이 맞물리면서 실수요와 괴리가 있는 공급을 유발, 근본적인 문제를 낳고 있다.

지난 6월 부도가 난 하이콤의 경우 극심한 자금난에 시달리면서도 「창세기외전」, 「쥬센사요」, 「은색의 용병」등의 판권을 확보하기 위해 경쟁사보다 2배 이상의 미니멈 개런티를 제시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실수요와 거리가 먼 개발사제작사유통사간의 거래는 대부분 유통재고를 유발시키고 상호간 반품이 허용되지 않는 분위기 속에서 자금난에 몰린 유통사들이 가격질서를 스스로 무너뜨리고 나아가 물물교환, 덤핑판매로 치달으면서 유통시스템 전체가 갈수록 부실해지는 우를 반복하고 있다.

현금회수를 최우선시 하는 총판, 도매상들의 행태는 소비자 가격을 오래전부터 유명무실하게 만들었으며 소매점 확산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평균 3개월짜리 어음을 주고 받는 결제관행과 담보 기피로 인해 영세한 개발사나 유통사들은 연쇄부도의 위험에 노출되어 있으며 덤핑과 물물교환 등 비정상적인 유통에는 필연적으로 무자료 거래가 수반되고 있다.

국내 PC게임 유통시장이 혼탁한 것은 내수시장이 연간 4백억원대 안팎으로 협소하고 개발사나 유통사들이 대부분 영세하다는 환경요인도 크게 작용하고는 있지만 결국 지금과 같은 악순환이 반복될 경우 게임산업 자체가 퇴보할 수 밖에 없다는 점에서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는게 업계의 중론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작년부터 일부 제작사와 유통사를 중심으로 기존 유통시스템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한 다양한 시도가 추진되고 있는 것은 주목할만한 일이다.

삼성전자가 C&C대리점과 비디오숍에 게임공급을 시작하고 신세계I&C와 게임박스가 각각 대형할인매장인 E마트와 24시간 편의점 등을 새로운 게임유통 루트로 개척하고 나섰다.

개발사가 직접 판로를 개척하려는 노력도 눈에 띄고 있다. 애니콤소프트, 퓨처엔터테인먼트, 만트라 등은 올들어 자사제품을 전담판매할 수 있는 대리점체제를 구축하고 있다.

이같은 새로운 시도들은 소비자들에게 도달하는 경로를 넓히고 유통단계를 줄인다는 점에서 우선 고무적이다.

이들 업체의 실무자들은 『대안 유통을 추진하는데 시행착오가 반복되고 있으며 적지않은 수업료를 내고 있다』고 어려움을 실토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이 마냥 앉아서 기존 유통시스템의 문제점을 지적하기보다는 직접 해결책을 찾아 나서는 등 새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이들이 현재 닥쳐있는 상황이나 당장의 성과보다 훨씬 높게 평가될만한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많은 문제점이 지적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악순환을 계속해온 게임유통시스템이 환골탈태하지 않는 한 게임업계 전체가 살얼음판을 걷지 않을 수 없다는 위기감이 어느 때 보다도 팽배해 있다.

<유형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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