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린 쿼터 폐지 "회오리"

「스크린쿼터제 폐지」 발언으로 영화계가 벌컥 뒤집혔다.

한국영화인협회(회장 김지미)를 중심으로 한 영화인들은 최근 영화산업의 장기적인 발전을 위해 스크린쿼터제의 폐지도 검토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을 한 한덕수 통상교섭본부장의 기자간담회 내용에 대해 우리영화 자생력의 토양을 앗아가는 중대발언이라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특히 영화인들은 「스크린쿼터 사수 범영화인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 스크린쿼터제의 폐지에 따른 어떠한 반대급부도 수용하지 않겠다며 「항전태세」를 보이고 있다.

영화인들의 이같은 저항은 지난 30일 김종필 총리대행이 『관련부처간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이므로 스크린쿼터제를 폐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밝힌데 이어 발언의 진원지인 외교통상부도 『한 본부장의 발언의 취지는 영화산업 육성을 위한 원론적인 얘기였다』고 한 발 비켜가는 성명을 발표하자 조금은 수그러드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영화인들은 행정부의 한 곳에서 스크린쿼터 폐지문제가 제기됐다는 점, 그리고 한, 미 통상무역협상을 불과 한 달 앞두고 불거져 나왔다는 점에서 뭔가 움직임이 있는 것이 아니냐며 긴장을 풀지 않고 있다.

스크린쿼터 폐지 여부를 둘러싼 논란은 비단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 66년 국내 영화산업 보호를 위해 도입된 스크린쿼터제는 우리영화의 토양이 되고 있다는 영화인들의 평가에 반해 관치의 성격이 강해 자율성을 해치고 유통(상영)에 대한 선택권이 박탈되고 있다는 극장주들의 반발을 사왔다. 그러나 이같은 극장주들의 주장은 우리영화의 육성을 위해서는 그 정도의 「희생」은 감수해야 한다는 여론에 눌려왔었다.

그러나 95년 세계무역협정(WTO)이 발효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WTO 무역협정의 주요 골자는 자국 산업보호를 위한 시장진입 규제철폐. 한덕수 본부장이 최근 기자간담회에서 제기한 스크린쿼터제 폐지 검토 발언도 이같은 국제통상의 어려움을 전제로 한 원론적인 얘기였던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미국의 우리 영상산업을 볼모로 한 통상 공세는 이미 아는 사람은 다 알 정도. 이달중 열릴 예정인 한미무역협상에서도 예외없이 우리 영화산업, 특히 스크린쿼터 문제가 의제로 올라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따라 일부 산업관련 부처에서는 언제까지 국내 영화산업 보호을 위해 타산업이 볼모로 잡혀야 하느냐는 볼멘소리가 적지 않았다.

이에따라 영상산업계 일부 관계자들은 이 시점에서 스크린쿼터제 시행여부를 포함, 영상산업에 대한 종합적인 육성책이 새롭게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 관계자는 『스크린쿼터제 폐지는 언젠가는 불가피하다. 그러나 이의 폐지를 위해서는 영상소프트웨어의 제작, 유통시스템이 먼저 변화돼야 하고 영화뿐만 아니라 비디오, 케이블, 음반산업의 종합적인 진단을 서둘러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스크린쿼터제 폐지에 따른 보완책으로 극장에 대한 과세표준을 대폭적으로 차등화, 우리영화 상영관에 대해 혜택을 많이 부여하고 정부의 영상개발 자금을 가시적으로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처방전도 당장 시행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게 영상업계의 시각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스크린쿼터제의 폐지 문제도 장기적인 안목에서 시간을 갖고 검토해야 하며 폐지가 불가피하다면 유예기간을 두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업계는 입을 모으고 있다.

『정부가 영화산업이 우리 전 산업의 볼모가 되고 있다고만 하소연할 게 아니라 영화인들을 직접 설득하고 영화산업, 더 나아가 영상산업 육성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등의 노력을 먼저 보였어야 했다』는 한 영상산업 관계자의 지적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모인 기자>


브랜드 뉴스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