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질의 본질을 탐구하는 물리학은 하면 할수록 재미있습니다. 특히 극미세 세계를 다루는 소립자분야와 방대한 우주론에 푹 빠질때면 시간가는 줄도 모릅니다.』
최근 아이슬랜드의 수도 레이캬비크에서 열린 제29회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서 금메달을 딴 손형빈(17, 경기과학고 2년) 군의 얼굴 표정은 아직 앳된 개구쟁이의 티를 완전히 벗지 못했다. 하지만 화제가 관심분야인 물리학에 이르자 이처럼 학문에 대한 태도를 당당하게 설명할 정도로 성숙한 면을 보여주고 있다.
손 군은 전세계 56개국에서 2백66명의 물리 천재들이 참가한 가운데 열린 이번 대회에서 50점 만점에 46점을 받아 전체 3등으로 금메달을 땄다. 한국은 5명이 참가해 금메달 1개, 동메달 3개로 종합 5위를 차지했다.
손 군은 5시간 동안 이론 3문제, 또 5시간 동안 실험 2문제를 푼 소감에 대해서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잡념 없이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또 『평소에 학교 성적에 신경쓰지 않고, 하고 싶은 분야를 집중적으로 공부한 것도 큰 도움이 됐다』고 설명했다.
손 군은 이어 입시위주의 교육보다 학생 스스로 학습하는 자율적인 교육이 바람직하다는 의견을 제시하기도 했다. 과학고 학생들은 모두 기숙사 생활을 하며 먹고 자는 시간을 빼고 하루에 14시간을 수업과 자율학습을 하기 때문에 『학교 공부가 지겨운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컴퓨터 오락을 하면 집중할 수 있는 것처럼 물리시간에는 다른 생각이 전혀 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손 군은 이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아버지 손영수(44)씨를 꼽고 있다. 손씨는 경기도 안산시에 있는 시화공단에서 수정진동자 회사에 특수전선(리드)을 공급하는 도솔이라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면서 자녀(1남1녀) 교육에도 남다른 관심을 보여 오늘의 성과를 일궈냈다.
사실 손 군은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평범한 학생에 불과했다. 학교 성적을 반에서 5등 정도 유지하는 등 상위권에 들기는 했지만 성격이 내성적인 데다 미술, 피아노, 태권도 등 학원공부에 도무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손 군의 숨은 천재성을 발견한 것은 초등학교 4학년 때. 손 군의 아버지는 당시 유행하던 286컴퓨터를 사준 것을 계기로 그의 학교성적, 특히 수학, 과학 등의 과목에서 눈에 띄게 좋아졌다고 설명했다.
손 군은 이를 계기로 컴퓨터분야에서도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때 컴퓨터에 취미를 붙이기 시작해 지금은 자유자재로 필요한 프로그램을 짜는 등 주위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있다. 또 중학교 1학년 때는 전국컴퓨터경진대회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입상하기도 했다.
지난해 물리올림피아드에서도 동메달을 땄던 손 군은 이번 금메달 획득으로 교장 추천에 따라 원하는 대학에 무시험 진학할 수 있게 됐다. 그의 꿈은 세계적인 물리학자가 되는 것. 그러나 그는 『솔직히 이공계보다 더욱 확실하게 안정된 생활을 보장하는 의대 등에 진학하는 것에 대한 미련도 많다』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지난 92년부터 국제물리올림피아드에 참가하는 학생의 선발 및 교육을 담당하고 있는 한국물리학회 및 과학고 관계자들은 『정부가 전체 학생의 3~5%에 해당하는 과학 영재를 조기 발굴해 이들을 집중 육성하기 위해 설립한 과학고에서조차 우수한 학생일수록 이공계 대학보다 취직과 성공이 보장되는 의대 및 법대 진학을 희망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또 『교육, 과학기술부 등 관련부처 담당자들조차 최근 IMF를 구실로 과학영재 교육이 불요불급한 예산이라며 대폭 삭감하겠다는 입장이며 또 신문, 방송 등 매스컴까지 박찬호, 박세리 등 체육 특기자들이 최근 해외에서 거둔 성과에는 열광하면서도 정작 21세기 한국의 국운이 달린 과학영재 교육에는 무관심한 현실에서 어린 학생들이 무엇을 배우겠느냐』고 반문하기도 했다.
손 군은 지난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받은 계절학교에는 학생들이 기숙사 및 점심을 무료로 제공받았으나 올해 서울대학에서 시행한 계절학교에서는 이를 자비로 부담, 특히 지방학생들이 큰 어려움을 겼었다고 실토했다.
우리나라 최고의 과학영재들이 한 사람당 몇 천원에 불과한 점심 값을 내면서 무엇을 느꼈을까 정부 당국자는 물론 우리 국민 모두 한번쯤 되돌아 보아야 할 대목이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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