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성파 마니아들 "컴퓨터 꾸미기"에 더위도 잊었다

「천편일률적인 몰(沒)개성 PC는 물러가라.」

평소 33.6kbps 모뎀을 통해 PC통신에 접속해온 L군(19)은 최근 56kbps 모뎀으로 업그레이드하는 것을 포기하고 종합디지털통신망(ISDN) 서비스를 신청했다. 초기 설치비용이 다소 들더라도 속도가 빠르고 안정성이 높은 ISDN 서비스를 선택하기로 한 것이다. 펜티엄MMX 기종을 갖고 있는 그는, 대신 다른 부품의 업그레이드를 뒤로 미뤘다.

전문대학을 졸업하고 컴퓨터그래픽(CG)학원을 다니고 있는 P씨(25)는 학원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본격적인 CG작업을 하고 싶어 자신만의 시스템을 갖기를 희망하고 있다. 조립업체를 찾은 그는 관계자로부터 상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그가 갖춰야 할 시스템 사양은 최저 펜티엄Ⅱ 3백㎒급. 주기판은 AGP(Accelerator Graphic Port) Ⅱ를 지원하는 제품으로 작업 성격상 그래픽 처리속도가 빠른 사양을 선택해야 한다. 그래픽카드 역시 AGP Ⅱ를 지원하는 제품으로 구비할 것.

다이아몬드 멀티미디어, 인텔, Asus사 제품이 시중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램은 최저 1백28MB는 있어야 하고 하드디스크는 6.4GB 정도면 만족스럽다. 모니터는 20인치 이상이면 무난할 듯. 그는 스캐너와 함께 디지털카메라 등 외부 입력장치를 지원하는 컨트롤러도 구입하는 것이 좋다는 권유를 받았다. 또한 저장장치인 CDRW가 향후 CD롬드라이브를 능가할 것이라는 설명을 듣고 이를 구입하기로 했다.

이처럼 최근 들어 자신의 용도에 맞는 PC를 마련하기 위해 용산 등 조립상가를 찾는 소비자들이 크게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각 업체들이 마련한 조립코너에서는 이른바 「색깔있는 PC」를 꾸미기 위해 상담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을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게임을 위해 태어났다고 자처하는 게임마니아 Y군(18)은 자신의 시스템을 게임위주로 짜고 있다.

그는 게임에서 기본이 되는 주기판만큼은 AGP Ⅱ를 지원하는 최고급 제품으로 골랐다. 램도 32M에서 64M로 늘리고 하드디스크 역시 3.2GB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 4.3GB SCSI를 지원하는 제품으로 선택했다. 그래픽카드는 ATI 등에서 다양한 제품이 나와 있지만 친구의 권유를 받아들여 최근 인기를 끌고 있는 부두Ⅱ 칩을 탑재한 마이크로소프트의 「몬스터3D Ⅱ」 4M짜리를 사기로 했다. 큰맘 먹고 사운드카드를 32비트급으로 구입한 그는 CD롬 드라이브만큼은 기존에 사용하던 것을 그대로 이용하기로 했다.

이 정도에서 끝냈다면 초보를 갓 탈피한 수준이지, 마니아는 결코 아니다. 다양한 게임을 해본 그는 게임에는 시스템 못지않게 액세서리가 중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비행기, 자동차용 시뮬레이션 게임을 즐기는 그는 다소 비쌀지라도 포스-피드백(Forth-Feedback)방식의 조이스틱인 「스러스트마스터」를 구입했다. 비행기의 꼬리날개와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조정하는 러더페달을 구입하고 나니 욕심이 생겨 비행기의 파워와 자동차의 기어를 넣을 수 있는 스로틀도 갖고 싶어 내친 김에 이 제품도 사버렸다.

그는 여유가 생기면 아케이드 게임을 좋아하는 동생을 위해 게임 패드도 있었으면 한다. 이와 함께 나중에 버추얼리얼리티 게임이나 3D게임시대가 본격화할 것에 대비, 고글과 입체 그래픽카드도 바라고 있다. 그러나 이들 제품은 주머니 사정도 사정이려니와 기술의 발전추이가 빨라 이를 보아가며 구입하기로 했다.

컴퓨터 음악은 PC상에서 시스템을 갖추기가 쉽지 않다. 최근 컴퓨터 음악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H씨(31)는 조립전문업체를 찾아가 상담한 결과, 초보적인 시스템의 구입이 가능했다. 그는 우선 음악카드 대신 MPU-401인터페이스와 별도의 외부 미디음원 모듈을 선택했다. 최근 PCI방식 음악카드들도 호평을 받고는 있지만 전문 미디를 하기에는 다소 약하다는 평가가 있어 피하기로 했다.

하드웨어적으로 지원하고 있는 매킨토시와 달리 IBM PC의 경우는 음악용 소프트웨어가 반드시 필요하다. 이에 따라 그는 「케이크워크」를 깔기로 했다.

이처럼 개성파 PC꾸미기는 일부 마니아들 사이에서 조금씩 퍼지던 수준을 넘어 빠르게 보편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DIY(Do It Yourself) 바람이 일조했다. 하지만 예전의 DIY에 비해 전문성이 크게 늘었다는 지적이다. 신세대들의 개성 찾기가 PC부문으로까지 이어진 듯한 이런 움직임은 이제 직장인들에게까지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개성파 PC를 꾸미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역시 정보. 이들은 PC통신을 뒤져보는 것은 물론 용산, 강변, 서초 등지를 마다않고 돌아다니고 있다. 일부 이용자들은 자신이 원하는 부품을 구입하기 위해 인터넷을 이용한 주문도 하고 있다.

개성파 PC를 갖기 원하는 이용자들은 대개 마니아인 게 특징이다. 이들은 시스템 꾸미기에 더 열성적인 만큼 더 많은 비용을 들인다.

시스템에 대한 애착은 물론 자부심도 강하다. 조심스럽게 자신들의 공간을 만들어 그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신제품에 대한 관심이 높고 써본 제품에 대한 평가도 다소 호들갑스럽다. 따라서 시장에서 여론을 주도하기도 한다.

개성파 PC를 사용하는 마니아는 결국 전문가다. 이런 마니아의 증가는 정보사회로 향하는 토양을 두껍게 한다. 따라서 개성파 PC꾸미기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 마땅하다.

<허의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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