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 KIST전산실의 발족-도입기종 선정 (6)
한국과학기술연구소(KIST) 전산실이 컴퓨터 도입기종 선정 입찰에 참가한 5개사 5개 기종에 대해 본격적인 평가작업을 벌이기 시작한 것은 68년 11월이었다. 입찰 제안서에 대한 1차 심사결과 일본 후지쓰신기제작소(富士通新器製作所)의 「화콤230-10」과 미국 스페리랜드(Sperry Rand)의 「유니백9400」 등 2개 모델이 탈락됐다.
「화콤230-10」은 컴퓨터 도입 비용을 제공키로 한 미국 국제개발처(AID)의 요구사항을 충족시키지 못했다. AID 측은 입찰조건에 대해 「미국산 컴퓨터」라는 단서를 달아 놓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유니백9400」은 발표 시점이 문제가 됐다. KIST전산실이 입찰참가 요청서를 작성하던 68년 9월경에는 「유니백9400」이 세상에 발표되기 직전이었다. 즉 서류상으로 입찰에 참가할 수 없는 기종이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1차 테스트를 통과한 것은 IBM의 「시스템(S)/360」, 버로스(Burroughs)의 「버로스3500」, 그리고 콘트롤데이터코퍼레이션(CDC)의 「CDC3300 MSOS」(줄여서 CDC 3300) 등 3개 기종이었다.
2차 테스트는 기종의 성능을 평가하는 기술 평가였다. 경험이 많지 않았던 성기수로서도 이 작업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었다. 다행히도 68년 초 성기수는 KIST설립과 초기 운영지원을 맡았던 미국의 바텔기념연구소에서 3개월 동안의 연수기회를 가졌는데 이것이 큰 도움이 됐다. 컴퓨터 도입을 앞두고 전산실에 입소한 김길수(金吉洙, 삼도데이터시스템 대표), 최덕규(崔德圭, 아주대 교수), 황규복(黃圭輹, 한국부가통신회장), 유완영(柳完英, LG정보통신 전무) 등이 성기수를 직접 도왔다.
연구원들과 함께 성기수는 바텔기념연구소의 사례를 참고하여 자체 벤치마크테스트 규정을 마련했다. 포트란 언어로 작성된 85종의 프로그램과 코볼 언어로 작성된 5종의 프로그램 등 모두 90종의 소프트웨어 목록을 입찰참가업체들에 주고 이들을 실행해 본 결과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이 요지였다. 포트란 언어 기반의 프로그램 테스트 항목이 압도적으로 많았던 것은 기종 선정의 방향을 처음부터 과학기술계산용으로 가져가겠다는 성기수의 의지가 반영된 것이었다. 일반 기업이나 관공서의 업무자동화용으로 도입할 컴퓨터였더라면 코볼 프로그램 테스트 항목을 늘렸을 터였다.
2차 테스트 결과 가장 성적이 우수한 것으로 판명된 기종은 「버로스3500」이었다. 그렇지만 버로스 측의 결과는 제시된 90종 가운데 10종의 소프트웨어만 테스트한 것이었다. 당연히 실격이었다. 결국 「S/360」과 「CDC 3300」등 두 기종만이 최종 선정대상에 올랐다.
2차 테스트 결과 「S/360」과 「CDC 3300」의 성능은 적어도 처리시간만 놓고 볼 때는 막상막하였다. 실제로도 두 기종은 여러 측면에서 볼 때 나름대로의 특장점들을 갖고 있어 어느 기종이 덜하고 더하다는 평가를 내릴 수가 없었다. 성기수는 마지막으로 자신이 직접 고안해낸 벤치마크테스트 결과 계산법을 적용키로 했다. 이 방법은 프로그램 처리 시간과 시스템 제안 가격을 곱한 다음 그 수치가 가장 낮은 쪽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이 방법은 나중에 추가 도입 기종선정은 물론 88년에 도입한 제1호 슈퍼컴퓨터 기종선정 과정에서도 적용돼 기종 선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잡음을 사전에 차단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3차 테스트에서 최종 낙점을 받은 것은 「CDC3300」이었다. 「CDC3300」은 가격 대비 성능에서도 「S/360」을 압도한 것으로 나타났다. 「CDC 3300」은 또한 성기수가 평소 KIST전산실용으로 적합하다고 생각하고 있는 기종이었다. 선정 방법이 공개적이고 객관적이었기 때문에 참가업체들도 성기수의 최종 기종 선정방식에 직접 이의를 제기하지는 못했다. 컴퓨터 도입 기종 선정작업은 이렇게 해서 한고비를 넘겼다. 이제는 미국의 AID에 기종 선정과정을 통보하고 도입 비용을 얻어내는 과정만 남게 됐다. AID는 66년 체결된 한미협정서에 따라 미국의 잉여농산물(주로 캘리포니아산 쌀)을 공여하는 방식으로 KIST에 컴퓨터 도입비용을 제공키로 돼 있었다.
사건은 바로 이 과정에서 일어났다. 난데없이 청와대 과학담당비서관이 「CDC 3300」 대신 「버로스 3500」으로 교체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과학담당비서관 C는 「버로스3500」으로 교체하지 않을 경우 잉여농산물을 팔아 조성한 도입비용을 한푼도 주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놨다. 성기수는 「버로스3500」은 2차 테스트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아 실격된 것이라서 교체할 수 없음을 분명히 하고 청와대가 돈을 지급하든 말든 컴퓨터는 제대로 된 것을 구입하겠다고 버텼다.
C는 성기수의 고집이 꺾일 기미가 보이지 않자 이번에는 과기처에 직접 압력을 넣어 스스로 전자계산조직도입심의회 위원이 돼 「CDC3300」의 도입을 막고 나섰다. 당시 컴퓨터는 워낙 고가여서 정부기관이나 민간기업 할 것 없이 모두 차관이나 정부보유외환자금을 빌어 도입했는데 이 과정에서 도입비용의 공여 여부를 심의하는 기구가 바로 전자계산조직도입심의회였다. 그러나 민간기구였던 전자계산조직심의위원회에 청와대 비서관이 심의위원으로 참여하게 된 것은 어느 면으로 보나 부자연스러운 것이었다.
69년 초 도입심사가 열린 과기처 회의실은 성기수와 C의 설전이 난무하는 자리가 돼버렸다. 주위에서는 『청와대비서관에게 대들어서 이로울 게 뭐있겠느냐』며 충고했지만 성기수는 아랑곳 하지 않았다. 결국 전자게산조직도입심의위원회는 과학담당비서관 C를 의식한 나머지 「CDC 3300」의 도입비로 책정됐던 일시불 70만 달러에 대해 전액 삭감하는 판정을 내려버렸다.
물론 그렇다고 전자계산조직도입심의위원회가 KIST전산실의 기종선정 과정을 전면 백지화한 것은 아니었다. 위원회는 성기수의 의견도 수용하여 70만 달러의 일시불 대신 5년간 월 1만6천8백50달러씩 지불하는 렌털 방식으로서 「CDC 3300」의 도입을 승인했다.
「CDC 3300」이 인천항을 통해 홍릉단지로 들어온 것은 CDC본사가 미국 샌프란시스코항에서 실물을 실어 보낸 지 한달 만인 69년 6월이었다.
3개월 동안의 설치작업과 테스트 과정을 거쳐 시스템이 정식 가동되던 날 밤 성기수의 가슴은 온통 설레임과 기쁨으로 뒤엉켜 잠을 이루지 못했다. 63년 미국 하버드대학원 유학시절 난생 처음 컴퓨터를 구경한 지 꼭 6년만의 일이었다. 하버드전자계산소에서 하늘색 캐비닛과 같은 모습의 「IBM 7090」을 처음 본 순간, 그 엄청난 계산속도에 놀라워 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그러나 총명했던 성기수는 경외로움에 그치지 않고 장차 모든 분야에 컴퓨터기술이 적용되는 정보화시대의 도래를 예감했고 언젠가는 조국에도 컴퓨터가 도입되는 날이 있으리라는 것을 확신했었다.
「CDC 3300」은 67년 4월 경제기획원이 「IBM 1401」을 도입한 이래 공식적으로 한국에 도입된 12번째 컴퓨터에 해당된다. 그러나 「CDC 3300」은 앞서 관공서나 기업의 업무전산화용으로 도입된 다른 11대의 컴퓨터와는 달리 처음부터 과학기술계산전용으로 제작됐다는 특징을 갖고 있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CDC 3300」의 도입 KIST전산실의 성장 그 자체는 물론이거니와 한국 정보산업 발전사에서 획기적인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68년에 발표됐던 「CDC 3300」은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복수 병행연산(멀티태스킹) 기능을 채택한 최첨단 컴퓨터였다. 여러 개의 연산장치를 이용하는 멀티태스킹은 복잡한 과학기술계산 과정에는 필수적인 기능이 아닐 수 없었다. 성기수가 처음부터 이 기종을 염두에 뒀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었다.
69년 도입당시 「CDC 3300」의 메모리 용량은 32킬로워드(Kilo Word)였다. CDC 기종에서 1워드의 값이 24비트(bit)였으니까 8비트(bit)를 1바이트(Byte)로 계산하는 오늘날의 PC 방식으로 환산하면 고작 96킬로바이트(kB)밖에 안 되는 수준이다. 그러나 KIST전산실이 이를 도입할 때만 해도 「CDC 3300」은 세계적으로 어떤 기종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았던 최고급 기종이었다. 확실한 것은 도입당시 이 기종이 한국에 도입된 컴퓨터 가운데 최대 용량이었다는 사실이었다.
한편 우여곡절 끝에 결정된 월정액 렌털 도입 방식은 그러나 나중에 컴퓨터의 용량 확장이나 추가도입 과정에서 오히려 전화위복의 계기가 됐다. KIST전산실은 「CDC 3300」을 도입한 지 1년여 만에 여러 종류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성공함으로써 컴퓨터 활용률이 급상승하게 됐다. 이에 따라 전산실은 「CDC 3300」이 가동된지 9개월만인 70년 6월 부족했던 메모리용량을 3배로 확장하게 되고 다시 1년 후인 71년 11월에는 최신기종인 「사이버72-14」를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물론 렌털도입 방식이었다. 만약 「CDC 3300」의 도입 비용이 일시불로 지급됐더라면 거액의 외화부담 때문에 시스템 확장이나 추가 기종도입은 쉽게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었다.
<서현진기자>
많이 본 뉴스
-
1
삼성, 첨단 패키징 공급망 재편 예고…'소부장 원점 재검토'
-
2
정보보호기업 10곳 중 3곳, 인재 확보 어렵다…인력 부족 토로
-
3
“12분만에 완충” DGIST, 1000번 이상 활용 가능한 차세대 리튬-황전지 개발
-
4
최상목 “국무총리 탄핵소추로 금융·외환시장 불확실성 증가”
-
5
삼성전자 반도체, 연말 성과급 '연봉 12~16%' 책정
-
6
한덕수 대행도 탄핵… 與 '권한쟁의심판·가처분' 野 “정부·여당 무책임”
-
7
美 우주비행사 2명 “이러다 우주 미아될라” [숏폼]
-
8
日 '암호화폐 보유 불가능' 공식화…韓 '정책 검토' 목소리
-
9
'서울대·재무통=행장' 공식 깨졌다···차기 리더 '디지털 전문성' 급부상
-
10
헌재, "尹 두번째 탄핵 재판은 1월3일"
브랜드 뉴스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