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오는 날이면 김치전과 막걸리 생각이 납니다. 하지만 더욱 생각나는 것은 산성비 걱정 없이 맘껏 뛰놀던 어린 시절입니다. 그냥 마셔도 걱정없던 빗물, 그 깨끗한 빗물이 그립습니다.』
윤영범씨(35)가 나우누리 글마당에 띄운 메시지다. 그의 글은 글마당의 다른 사람들처럼 장문이거나 화려하지 않다. 또 신세대다운 파격이 넘치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이들로부터 인기를 끌고 있다. 그 이유는 그의 글이 「만화」라는 또다른 언어로 장식돼 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처럼 말을 조리있게 하지도 못하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는 능력도 없습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만화죠. 아무래도 만화라면 제 생각을 좀 더 쉽고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림쟁이라는 아이디를 가지고 있는 윤씨가 나우누리 글마당에 그의 이름을 걸고 만화연재를 시작한 것은 지난달 15일부터. 한달이 채 안되는 기간이지만 약 30여편 이상의 만화가 올려져 있다. PC통신 업체에서 더러 만화정보를 제공하기는 했지만 게시판의 글을 만화로 올리는 것은 그가 처음. 그래서인지 그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한다는 데 의미를 두고 싶다』고 말한다.
윤씨의 사이버 공간을 통한 「그림글」의 역사는 꽤 오래된 것이다. 그는 지난 95년 당시 유행하던 안시(ANSI)를 이용한 시사만화를 그려 통신인들의 인기를 끌었다. 그는 지금도 나우누리에서 안시동 시삽을 맡고 있을 만큼 안시 전문가다. 하지만 아무리 전문가라도 안시로 표현하는 것은 한계가 있게 마련. 텍스트 기반의 기호나 색만으로 그림을 그려야 하기 때문이다.
『최근 개선된 통신환경에 용기를 얻어 그림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아직은 미숙하지만 이용자들이 보내오는 격려와 비평, 또 질책까지도 제게는 많은 도움이 됩니다.』
그가 한편의 만화를 만들기 위해 걸리는 시간은 평균 4시간 정도. 종이 위에 그림을 그린 후 작품이 완성되면 그림을 스캐닝해서 PC로 색을 입힌다. 보통사람이라면 엄두가 나지 않을 일이지만 그는 「그림 그리는 것이 좋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즐거워한다. 다른 사람처럼 꼬박꼬박 직장에 나가지 않는 직업이라는 점도 그가 사이버 만화가로 활동하는 데 도움을 준다. 팬시회사 디자인실에서 캐릭터 디자이너로 약 7년간 일했던 윤씨는 몇년 전부터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아이디어를 내는 것이 가장 힘듭니다. 잘 되지 않을 때는 며칠이 가도록 한편도 그리지 못하기도 하죠.』
윤씨가 만화로 표현하는 주제는 다양하다. 사람들이 살아가는 이야기에서부터 정부 정책의 문제점, 재미있는 유머 등 모든 것을 만화 속에 담아낸다.
『다양한 소재를 다루다 보니 한편으로는 캐릭터가 약하다는 평을 듣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직 나만의 캐릭터를 확정짓는 것은 이르다는 생각입니다.』
『통신속도가 빨라지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만화 한편을 보기가 너무 힘들다고 말하는 이용자들이 많다』는 윤씨는 『하루빨리 통신환경이 개선돼 더 많은 사람들이 그림을 보고 여러 가지로 이용해줬으면 좋겠다』고 덧붙인다.
<장윤옥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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