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부품업계 "지도" 바뀐다 (15);세계 RF시장

지난달 7일 미국 볼티모어 컨벤션센터에서는 전자부품 전시회인 「국제 마이크로웨이브 전시회」가 열렸다. 이 전시회에 참여한 국내 중소기업들은 루슨트테크놀로지스 등 세계적인 기업들이 전시부스를 화려하게 꾸민 것과는 달리 소박하기 이를 데 없었다. 그렇지만 마이크로통신의 부스에는 관람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마이크로통신을 찾은 모토롤러 등 세계적인 세트업체들은 제품설명을 듣고 난 후 「원터풀」을 연발했다. 샘플 요청과 함께 견적서도 보내달라는 얘기도 잊지 않았다.

또 하나의 사례. 지난해 겨울, 경기도 이천 한원종합기술연구소에는 때아닌 외국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 모토롤러 구매담당 임원들이 이 곳을 방문한 것이다.

이들은 생각보다 너무 작은 규모의 연구소에 실망한 눈치가 역력했다.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안창돈 연구소장은 제품과 기술에 대해 하나씩 셜명해갔다. 소장의 설명이 시작되자 이방인들은 감탄을 하기 시작했으며 설명이 끝나자 이들은 「독점공급」을 요청했다. 그러나 한원은 모토롤러 만으로는 만족하지 않는다면서 「노」라고 응답했다.

IMF체제로 모두가 우울하지만 RF업계만은 그렇지 않다. 기술력으로 무장한 RF업계는 시장타깃을 국내가 아닌 세계로 잡고 뛰고 있다. 이들은 세계 전자부품지도를 코리아로 돌리기 위해 개발한 기술이나 제품이 국내 최초에는 별로 관심이 없다. 세계 최초여야만이 만족한다.

마이크로통신은 이번 마이크로웨이브 전시회에서 세계 최초로 갈륨비소 반도체를 이용한 고주파 집적회로를 응용해 이동통신 중계기용 통합모듈을 선보였다.

5개의 핵심부품을 하나의 모듈로 통합한 이 제품은 크기를 종전의 5분의 1로 줄였으며 가격도 절반 이하로 낮춰 세트업체로부터 높은 관심을 끌었다.

마이크로통신은 통합모듈뿐만 아니라 저잡음 중폭기, 이중 주파수 변환기 등 이동통신 RF부품 10여종을 개발, 현재 세계 30여개 업체로부터 샘플 및 견적서를 보냈으며 내년에는 연간 4천만달러 이상의 수출을 달성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한원은 올 상반기 이미 1백80만달러 어치의 수출실적을 거뒀다. 수출을 시작한 지 3개월만의 실적이다. 올해 3백만달러 어치를 수출하는 것은 무난히 달성할 것이라는 게 한원의 얘기다.

한원은 이동통신용 유전체 관련 필터 및 안테나 전문업체로서 이 시장에서 세계 최고의 기업인 일본의 교세라에 도전장을 낼 만큼 당당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한원은 대기업보다 훌륭한 기술연구소를 보유하고 있다. 연구인력 23명 가운데 박사 5명과 석사 7명을 보유하고 있으며 세계적인 유전체필터 및 세라믹안테나 분야 석학인 홍의석 광운대 대학원장과 김현재 KIST 책임연구원이 기술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도남시스템도 얼마 전 광통신상에서 신호전송이나 측정을 할때 발생되는 편광문제를 세계 최초로 광섬유를 이용한 편광스크램블러(Polarization Scrambler)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 RF업계가 세계 전자부품지도를 바꾸기 위해서는 단지 기술력만으로는 어렵다. 아직 대부분이 직원 1백명이 넘지 못하는 중소기업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기술을 제품화하는 데도 아직 더디다. 특히 신기술 및 제품 개발에 소요되는 막대한 자금도 이들에게는 해결해야 할 문제다.

국내 RF업계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기술력 하나로 세계시장에 뛰어든 그들이지만 세계 유수한 기업들이 그들의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그들이 세계 전자부품지도를 새롭게 만들어 가고 있기 때문이다.

<양봉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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