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부문의 빅딜이 과연 정부의 뜻대로 국내 반도체 산업의 구조를 조정해줄 수 있을 것인가」.
금융권의 구조조정 작업이 진행되면서 한동안 수면 밑으로 가라앉았던 대기업간 빅딜이 4일 김대중 대통령과 재계총수들의 청와대 회동에서 재론될 가능성이 조심스레 점쳐지고 있다.
그러나 LG반도체가 빅딜의 대상으로 거론되기 시작한 이후 반도체 부문의 빅딜이 가져올 효과에 대한 분석이 지나치게 미흡했다는 지적이 강력히 제기되면서 반도체 부문 빅딜의 무용론이 업계에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 수출의 10% 이상을 차지하는 간판 수출산업을 단순히 기업 구조조정의 성의를 표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을 경우, IMF 상황에서도 비교적 안정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전자산업 전체에까지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반도체 업계는 바라보고 있다.
이와 관련, 국내 유일의 반도체 시장조사업체인 세미피아컨설팅그룹의 김대욱 사장은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반도체 부문 통합은 득보다 실이 많다』고 단언하고 있다.
김 사장은 『기업의 통합이란 기본적으로 통합에 따르는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는 것』이라고 전제하면서 『하지만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은 기술적인 측면은 물론이고 마케팅적인 측면에서도 시너지 효과를 기대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우선 기술적인 측면만을 살펴보더라도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통합은 실익이 없다는 게 양측 모두의 시각이다.
삼성전자와 LG반도체는 기본적으로 반도체 설계기술이나 공정기술은 물론이고 생산설비까지 호환성이 없다.
이와 관련, 양사의 64MD램 3세대 제품을 동일한 공정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5천억원 이상의 보완투자가 소요될 것으로 업계는 추정하고 있다.
반도체 업체의 한 공정 담당 엔지니어는 『반도체 공정의 최고 핵심장비인 스테퍼만 하더라도 삼성전자는 니콘과 ASML장비가 주종을 이루고 있는 반면 LG반도체는 캐논 장비가 사용되고 있고 증착 및 식각장비 등도 서로 호환이 불가능한 기종을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양사의 통합이 이제 성장기에 접어든 국내 반도체 장비 및 재료 산업의 기반을 일거에 무너뜨릴 가능성도 크다.
국내 한 장비업체의 관계자는 『국내 반도체 장비산업은 사실상 소자업체별로 계열화되면서 성장해왔다』는 점을 지적하면서 만약 LG반도체가 삼성에 통합될 경우, LG와 협조체제를 가진 상당수의 반도체 장비 및 재료업체들은 사업 기반을 상실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문제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서로 판이한 설계 및 공정기술을 단일화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년 이상의 R&D기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양사의 엔지니어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한두달정도의 개발 기간 차이로 시장에서의 성패가 판가름나는 반도체 업종에서 1년이라는 공백은 치명적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물론 독립된 업체처럼 각기 다른 생산방식과 생산설비 형태로 이원화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하다. 같은 제품이라고 하더라도 6개월단위로 차세대 모델로 대체되는 반도체 산업의 속성상 천문학적인 비용이 투자되는 R&D 활동을 이원화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케팅 측면에서도 남는 장사가 아니라는 게 업계 전문가들의 공통된 시각이다.
현재 삼성전자와 LG반도체의 세계 D램시장 점유율은 각각 20%와 13%수준.
하지만 통합 이후 양사의 단순합인 33%의 점유율을 유지할 수 있느냐는 미지수다.
우선 전세계 D램의 70%이상을 구매하는 컴팩, IBM, HP 등 대형 PC업체들은 특정업체에 편중된 구매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 걸림돌이다. 이들은 대개 1개 D램업체의 구매비중을 최대 20%까지로 제한하고 있기 때문이다. 생산량은 불어나지만 판매량은 오히려 줄어드는 기현상이 예상되는 것이다. 더욱이 최근의 D램 시장이 공급과잉인 상태에서는 이같은 우려가 더욱 크다는 지적이다.
또한 반도체 빅딜을 통한 거대 D램 업체의 등장은 해외업체들의 적극적인 견제, 독과점문제, 통상 압력 등의 부정적인 문제를 파생시킬 우려도 점쳐지고 있다.
<최승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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