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아탑에 "벤처열매" 주렁주렁

김재호 부산대 교수(전자과, 43)는 지난해 학교 후배 및 제자 5명과 공동으로 이미지 신호처리 전문회사인 MI사를 설립한 데 이어 최근 이 회사의 경영에 전념하기 위해 학교에 휴직계를 제출했다.

국내 대학에서 벤처기업 경영을 목적으로 교수직을 그만둔 첫번째 사례다. 특히 풍부한 산업체 근무경험이 있는 김 사장은 벤처기업이란 아무 것도 보장받지 못하는 모험 그 자체라는 것을 누구보다 더 잘 꿰뚫고 있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그의 휴직은 국내 대학가, 특히 창업을 희망하는 이공계 대학교수들을 중심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고 있다.

그는 이와 관련, 『지난해 설립한 MI를 영상처리 분야 세계적인 기술기업으로 키우기 위해 오랜 고민 끝에 교수직까지 포기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명목상으로는 휴직으로 처리됐기 때문에 대학으로 복귀할 수 있는 길이 여전히 열려 있지만 한번 기업가로 나선 이상 이 분야에서 승부를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오히려 반문할 정도로 그의 사업에 대한 의지는 확고하다.

앞으로 MI가 주력할 분야는 고속 영상처리 기술로서 하드웨어 제품개발은 물론 소프트웨어, 휴먼웨어, 펌웨어, 그리고 이들 모든 기술을 종합한 코웨어 등의 기술을 바탕으로 세계 최고 수준의 부가가치를 창출할 계획이다.

김 사장은 지난 80년 부산대 전기과 졸업 후 지난 92년 부산대 교수로 임용될 때까지 10여년 동안 삼성전자 등에서 팩시밀리를 국내에서 처음으로 개발하는 등 영상처리 분야에서 국내 최고 전문가로 통해 왔다.

이에 앞서 이일병 연세대 교수(컴퓨터과학과, 44)도 지난 95년 AI테크라는 문자인식 기술개발 전문회사를 박사과정의 제자와 공동으로 설립, 신용카드 전표 자동인식 기술 등을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이 교수는 특히 미 MIT에서 신경망을 정식으로 전공, 이를 이용한 문자인식 기술분야에서는 손꼽히는 전문가로 통하기 때문에 그가 개발한 소프트웨어는 벌써부터 더존소프트 등 회계 소프트웨어 전문업체는 물론 SI업체 등으로부터 기술이전 요청이 쇄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부산대, 연세대 등 국내 유수 대학의 교수들이 최근 학교 후배 및 제자들과 공동으로 벤처기업을 설립해 경영자로 변신하는 사례가 속출, 대학가에 부는 창업바람을 실감케하고 있다.

또 서울대, 숭실대, 조선대 등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10여개에 달하는 대학들도 최근 각각 신기술창업 네트워크 또는 창업지원연구센터 등을 잇달아 설립, 교수와 학생들이 공동으로 창업할 때 이들에게 연구공간 제공은 물론 창업정보 및 벤처자금 알선 등에 대해서도 체계적이고 지속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체제를 완비했기 때문에 교수들의 벤처기업 창업열기는 앞으로 더욱 뜨겁게 달아오를 전망이다.

특히 숭실대가 올해 역점사업으로 추진하고 있는 창업지원연구센터에는 지금까지 이 학교 재학생 및 졸업생들이 창업한 벤처기업 15개사가 입주해 있으며, 이들 회사에는 각각 1명 이상의 교수들이 기술개발 또는 회사경영에도 깊숙하게 참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중에 지난 2월 대학원을 졸업한 최성민씨(26)가 최근 설립한 매직캐슬사의 경우 그가 학교에 다닐 때 참여했던 「광대역 ATM망에서 핸드오버에 대한 연구과제」의 상업화를 꾀하고 있는데, 논문 지도를 맡았던 전문석 교수가 연구개발 책임자로 관여하고 있다.

이 회사는 그동안 컴퓨터 보안용 방화벽 시스템의 초기 버전을 개발, 한국전산원 등 국가기관에 성능검증을 의뢰한 결과 기존의 방화벽이 2진 논리로 단순하게 외부의 침입자를 차단한다는 한계성을 극복하고 침입자들의 행동을 정확하게 감시할 수 있는 등 그 성능이 매우 우수한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이에 따라 이 회사는 벌써부터 올해 안에 수입제품들이 거의 독점하고 있는 국내 방화벽 시장의 약 30%를 탈환할 계획이며, 이를 바탕으로 내년부터 해외시장에도 진출하는 등 중, 장기적인 비전 마련에도 부심하고 있다.

이때 숭실대 교수들이 기술료 명목으로 받는 주식지분은 평균 10%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서울대, 조선대 등의 신기술창업 네트워크 또는 창업지원연구센터 등에도 각각 5~10여개 벤처기업들이 입주를 완료했으며 또 이들 중에 절반 정도의 기업들이 각각 그 대학의 교수들을 직, 간접적으로 기술지도 및 경영활동에 참여시키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대학가의 새로운 풍속도를 낳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특히 우리나라 경제가 지난해말부터 IMF 등으로 최악의 불황을 겪으면서 그동안 「절대 망하지 않는다」던 대기업과 은행마저 줄줄이 도산함으로써 대학 졸업생들의 취업기회가 완전히 막혀 있는 가운데, 이제 대학도 창업 등을 통해 고용을 창출하는 등 스스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성도 함께 담겨져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김재호 MI 사장은 『극심한 불황 등의 이유로 최근 대학생들은, 특히 지방 대학생들은 학교를 졸업해도 취직할 곳이 없기 때문에 학창시절부터 희망을 잃어버린 세대가 되고 있는 현실을 보며 나부터 벤처기업가로 성공, 이들에게 잃어버린 희망을 찾아 주어야겠다는 생각에서 창업을 결심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또 정부가 최근 「벤처기업 육성을 위한 특별법」 시행령에 「대학 교수 및 정부출연연구소 연구원들이 창업할 때 3년까지 휴직할 수 있다」는 조항을 명문화한 것도 교수들의 창업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구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모처럼 불붙기 시작한 국내 교수들의 벤처기업 창업열기가 미국, 이스라엘 등 벤처 선진국들의 경우처럼 풍성한 열매를 맺으려면 선결해야 할 과제도 산적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일병 교수는 무엇보다도 『연세대를 비롯해 대부분의 국내 대학들이 교수가 회사의 대표를 겸직하지 못하도록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어 어쩔 수 없이 박사과정에 있는 제자를 회사대표로 내세웠는데 이 때문에 겪은 어려움이 많다』며 『미국의 경우처럼 대학교수들이 자유롭게 기업체 대표를 맡을 수 있는 환경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학 교수들이 창업 때 휴직할 수 있는 조항도 실제 시행과정에서 많은 어려움이 나타나고 있다. 우선 보수적인 사립대학들은 대부분 교수의 휴직을 적극 만류하고 있는 상황이고 또 어렵게 휴직을 하는 경우에도 강의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학생들과의 관계가 끊어지고 대학의 연구기반도 와해되기 십상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이인규 무한기술투자 사장은 『미국, 이스라엘 등 벤처 선진국에서도 대학 교수는 연구원들과 함께 벤처기업 창업의 성공가능성이 가장 높은 집단으로 평가받고 있다』며 『이에 따라 현재 우리나라 대학가에 불고 있는 창업열기를 얼마나 생산적으로 활용하느냐에 우리나라의 미래가 달려 있다』고 조심스럽게 평가했다.

무한기술투자는 현재 MI사와 약 2억원을 투자하는 협상을 거의 마무리한 상태이며 이 밖에도 올해 안에 적어도 3건의 교수창업을 더 발굴, 각각 2억~3억원씩 투자할 계획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전국을 뒤흔들고 있는 벤처기업 창업 바람은 대학가, 그 중에서도 교수집단에 어김없이 스며들고 있으며 이 바람은 앞으로 더욱 큰 회오리를 몰고올 것이 거의 분명해 보인다.

【서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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