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재미있고 신기한 과학이야기 (17);핵실험과 고질라

1954년 3월 1일 아침. 서태평양 비키니 환초에서는 미군 합동 기동부대가 모종의 실험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실험은 바로 수소폭탄을 터뜨리는 것이었다.

실험지역에서 사방 1백3㎞ 이내에는 출입금지 해역으로 설정되어 어선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 물론 정박해 있던 선박들도 쫓아냈다. 이 사실에 대해 군사과학 평론가 랠프 랩은 『방사능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보안조치의 일환이었던 것같다. 왜냐하면 풍향을 고려해서 방사능 낙진에 대비하려면 그 이상의 거리까지 통제했어야 하기 때문』이라고 밝힌 바 있다.

아무튼 미군측은 폭발 지점에서 동쪽 48㎞ 정도에 10여척의 관측함을 배치하고 실험을 감행했다. 당시 바람은 북쪽을 향하고 있었다. 수폭이 터지자 버섯구름은 하늘 위로 35㎞ 가까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그 고도에서 풍향이 동쪽으로 바뀌어 「죽음의 재」가 관측함들에 쏟아지기 시작했다. 승무원들은 전원 실내로 들어가고 배는 밀폐되었다. 강력 펌프와 특수 노즐이 수십톤의 물을 퍼부어 갑판을 샅샅이 씻어냈다. 위험지역을 벗어나 안전해졌다는 판단이 설 때까지 승무원들은 질식할 것같은 열대지방의 밀폐공간에서 견뎌야 했다.

당시 폭발지점에서 동쪽으로 1백67㎞ 부근에는 「제5 류우큐우마루」라는 일본 참치잡이 어선이 조업중이었다. 어획량이 적어서 선원 두세명이 낚싯대를 드리운 채 기다리고 있던 아침 나절, 그들은 서쪽 하늘에서 기이한 섬광이 번쩍하는 것을 보았고 이어 불길한 뇌성을 들었다.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다시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하늘에 뿌연 안개가 끼더니 갈색 재가 마구 흩날리며 떨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밟으면 버석거릴 정도로 재는 이내 갑판에 쌓여갔다.

선원들은 놀라서 조업을 중단하고 귀환길에 올랐다. 나중에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방사성 질병에 걸려 고통을 받게 된다. 그들이 모항인 아이즈에 도착할 즈음, 수폭실험과 일본 어선의 낙진피해 소식은 이미 전세계적으로 뜨거운 이슈가 되어 있었다.

당시의 실험에 대한 보고서는 62년에야 나왔는데 그에 따르면 일본 어선은 아슬아슬하게 파국을 면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들이 조금만 남쪽에 있었더라면 낙진을 고스란히 뒤집어쓰고 전원 사망했을 것이라고 한다. 폭발지점 주변 25군데에서 측정한 방사능 수치 분석에 따른 추정이었다.

아무튼 1954년 3월에 그 실험이 있고 나서 몇달 뒤, 일본에서 한편의 흑백 영화가 개봉되어 공전의 성공을 거두었다. 「고지라」, 핵실험으로 탄생한 거대한 괴수였다. 「고지라」는 「고릴라」와 일본말 「쿠지라」(고래)의 합성어다.

「고지라」는 「괴물의 왕 고질라」라는 제목으로 2년 뒤 미국에서도 개봉되어 성공을 거두고 그후 오늘날까지 무려 20편이 넘게 후속편이 제작된 세계 최장의 SF영화 시리즈가 되었다.

이번에 우리나라에서도 개봉되는 할리우드 영화 「고질라」는 바로 44년 전 「고지라」의 새로운 리메이크다. 처음 장면에서 프랑스가 핵실험을 한 뒤(그들은 95년 이후 국제적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핵실험을 거듭했다) 돌연변이로 고질라가 탄생한다는 설정, 그리고 일본 참치잡이 어선이 고질라에 당한다는 묘사는 40여년 전의 비키니 환초 수폭실험과 일본어선의 피해, 그리고 당시의 반핵 여론을 등에 업고 영화 「고지라」가 나오는 과정을 거의 그대로 재현한 것이다.

「고지라」는 우리나라에도 비슷한 내용의 영화를 낳았다. 67년에 일본 특수 효과팀의 도움으로 「대괴수 용가리」가 발표되어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고 같은 해에 순수 국산기술로 제작된 「우주괴인 왕마귀」도 나왔다. 요즈음 해외시장에서 괄목할 만한 판매실적을 올리고 있는 심형래 제작 「용가리 1998」은 바로 「대괴수 용가리」의 리메이크다. 올 겨울 개봉예정으로 제작이 한창이라 한다. 그런데 「고지라」에 반핵 메시지가 담겨있다면 「용가리」에는 어떤 의미가 숨어있을까.

<박상준, 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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