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초점] 한국선 "빌 게이츠" 왜 안나오나

한국에서는 왜 제2의 빌 게이츠가 나오지 않는 것일까.

한글과컴퓨터호의 침몰과 함께 한때 벤처스타의 대명사에서 이제 실패한 사업가의 전형으로 동반추락한 이찬진 사장을 지켜보면서 업계 관계자들은 이같은 의문을 던진다.

컴퓨터 및 정보통신업계에는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신세대 창업주들이 많다. 특히 게임시장은 대학시절 패밀리프로덕션과 판타그램을 각각 설립한 차승희 사장(27)과 이상윤 사장(28)을 비롯, 20대 사업가들의 텃밭이다. 인터넷과 멀티미디어 분야에도 신기술을 무기로 창업에 도전하는 겁없는 젊은이들이 얼마든지 있다. 지난해 2월 고교 졸업과 함께 화이트미디어를 출범시킨 이상협 사장(19)도 그중 하나.

그러나 이들이 이찬진 사장의 전철을 밟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일부 투자전문가들은 앞으로 5년간 한국에서 제2의 빌 게이츠가 나올 확률은 희박하다고 단언한다. 중장년층 경영자나 마케팅이 탁월한 젊은 사업가가 성공스토리를 만들 수는 있어도 빌 게이츠처럼 엔지니어로 출발해 백만장자의 꿈을 실현시키는 경우는 아주 드물 것이라는 주장이다.

벤처캐피털 무한기술투자의 정기성 팀장은 『소유권에 집착하는 우리사회의 문화가 걸림돌』이라고 말한다. 엔지니어로서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남다른 창업주들일수록 소위 잘 나갈 때 M&A 기회를 외면하고 마케팅 경험이 풍부한 전문경영인 영입을 꺼려한다는 것. 중요한 것은 회사의 전투력을 보강해 시장을 개척하고 돈을 버는 것이지 사장자리 지키기가 아니라는 얘기다. 미국의 넷스케이프사 등 실리콘밸리의 신흥명문들은 대부분 경험이 풍부한 전직 대기업 경영자에게 CEO를 맡긴다. 빌 게이츠처럼 엔지니어 출신으로 뛰어난 사업수완까지 겸비한 사람은 아주 드물다. 섣부른 빌 게이츠 흉내내기는 창업주들을 오히려 실패로 이끈다.

벤처캐피털리스트 경험이 있는 유통업체 미디어링크 박태성 실장은 창업주에게 위험이 집중돼 있는 구조적 문제를 지적한다. 이는 창업주, 기술진, 벤처캐피털, 컨설팅업체에 골고루 위험이 분산되는 미국의 경우와 대조적이라는 설명이다. 초기 자금을 투입하고 기술팀을 구성해 회사살림을 시작하는 창업주는 물론 실패했을 때 모든 것을 잃는다. 유능한 기술자가 전 직장을 포기하고 신생업체로 옮겨 높은 보수 대신 스톡옵션을 받는다면 위험부담을 안는다. 이런 회사에 담보도 없이 자금을 지원하는 벤처캐피털이나 노하우를 제공하는 컨설팅그룹도 마찬가지다. 이런 시스템을 갖추고 나면 한 배를 타게된 4인조는 공동의 목표를 향해 전력투구할 수밖에 없다. 지분가치의 하락을 막고 성공확률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서슴없이 창업주를 밀어내고 다른 경영자를 영입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벤처창업주에게만 위험과 보상이 집중돼 있다. 첨단산업 벤처의 경우 개발력이 있는 기술진은 대부분 재취업이 가능하고 금융기관은 미리 확보해 둔 담보채권 덕분에 사활을 염려할 정도는 아니다. 전문적인 컨설팅그룹이란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니 인적 구성원 모두가 성공을 위해 매진할 준비가 돼있는 외국 벤처업체를 따라잡기는 힘들다.

결국 한국에서 제2의 빌 게이츠를 만들려면 적절한 시기의 M&A와 벤처캐피털의 과감한 베팅이 이루어질 수 있는 유연한 기업풍토와 함께 「위험부담 대 수익배분의 원칙」이 철저히 지켜지는 투자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이선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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