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윤발, 유덕화가 스타덤에 오르면서 한국에서도 선풍을 일으켰던 80년대 후반 90년대초의 「홍콩 느와르」는 쉴 새 없이 전개되는 총격전도 충격적이었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갱들이 마치 군용 무전기를 연상케 하는 큼지막한 휴대폰을 들고 다니는 장면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물론 이제는 그같은 모습이 홍콩 영화에서는 사라졌다. 누구나 들고 다니는 것이 휴대폰이라 굳이 갱의 캐릭터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이동전화기를 활용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는 말은 이동전화의 효율성과 기능을 강조하는 광고 카피로 유명하다. 심지어 일본의 NTT와 스웨덴의 에릭슨이 제휴, IMT2000을 개발하는 NTT도코모라는 회사의 이름도 이런 뜻이라고 한다. 이동전화의 편리성과 속성을 절묘하게 집어낸 「시도 때도 없이 터진다」는 카피는 순식간에 일반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급기야 우리나라에서도 1천만 시대가 개막됐다.
이동전화 사용자가 1천만명이라면 2천만 가구수를 기준으로 할 때 2집에 한대 꼴이다. 한 때는 이동전화가 신분의 상징이었지만 이제는 명실공히 생활 필수품이 됐다. 특히 개인휴대통신(PCS)이 가세하면서 20대에서 60대까지 대한민국 국민이면 누구나 주민등록증 처럼 항상 갖고 다니는 일상용품이 된 것이다.
그래서 「시도 때도 없이 터지는」 이동전화는 어느새 「시도 때도 없이 울려서 골치아픈」 문명의 이기로 둔갑했다. 사람들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이동전화 벨 소리에 주위 모두가 허겁지겁 자신의 전화기를 꺼내느라 법석을 떠는 웃지못할 모습은 흔한 풍경이다.
이쯤이면 웃어넘길 일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달리는 시내버스나 식당에서 남들은 아랑곳 하지 않고 큰 소리로 전화하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것은 고통이다.
음악회나 연극 공연장에서 쉴 새 없이 울려대는 이동전화 벨 소리는 관객은 물론 연주자 배우들까지 허탈하게 한다. 심지어 성당이나 교회의 미사 예배시간에도 휴대폰 벨 소리는 어김 없이 울려 댄다. 이 정도면 짜증을 넘어 거의 분노 수준에 이른다. 얼마전에는 아르헨티나의 축구 스타 디에고 마라도나가 영화관에서 휴대폰으로 잡담을 하다 관객들에게 항의를 받는 등 곤욕을 치렀다는 기사가 신문의 해외 토픽란을 장식하기도 했다.
무분별한 이동전화 사용은 급기야 주위 사람들에게 짜증과 분노를 안겨 주는 선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자신과 다른 사람의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는 엄청난 결과를 초래 하기도 한다. 시속 1백킬로미터가 훨씬 넘는 고속 주행을 하면서 한 손으로는 핸들을, 다른 한손에는 휴대폰을 들고 통화하는 운전자를 발견하는 것은 쉽다. 옆에서 보기에도 섬뜩한 이같은 장면은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일반화된 것이다. 운전자가 운전중 휴대폰을 사용하면 사고 발생율이 무려 50%나 높아진다는 보고는 이미 외국의 전문기관들이 통계로 밝혀 낸 것이지만 우리나라의 용감한(?) 운전자들은 이에 아랑곳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싱가포르에서는 아예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금지를 입법화 하고 있다. 싱가포르 운전자들도 우리나라와 비슷한 지 이런 강제규정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운전중 휴대전화 사용이 줄어 들지 않자 싱가포르 경찰은 적발된 사람에 대해 전화기를 몰수하고 1백70달러(싱가포르 달러)의 벌금을 물린다.
비행기 탑승시 가장 먼저 듣게 되는 안내방송이 휴대전화의 사용을 자제해 달라는 것이다. 대만의 경우 지난달부터 항공기 탑승객은 이동전화를 아예 꺼내지도 못한 채 가방을 짐칸에 올려 놓아야 한다는 규정을 시행하고 있다. 이 규정을 어긴 사람은 15만 달러(대만달러)의 벌금형이나 최장 5년의 징역형에 처해진다는 무시무시한 처벌을 받게 된다.
대만 정부의 이같은 강제 규정은 올해초부터 민간 및 군용기가 잇따라 추락한 데 따른 항공안전 방안 검토 작업 끝에 나온 것이라고 한다. 이를 뒤짚으면 비행중 휴대폰 사용이 여타 항공기 계기의 오작동을 불러 일으킬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나타낸 것이다.
초정밀 전자기기 주변에서 이동전화를 사용하면 전자파 간섭 등이 발생, 전자기기의 고장이나 오작동을 야기 시킨다는 것은 병원에서 가장 먼저 발견 했다. 계측 장비가 제대로 움직이지 않거나 엉뚱한 결과가 도출돼 결국 환자에게 치명적인 위험을 안겨 주는 사례가 빈번했던 것이다. 물론 일본의 주요병원에서는 병원내 이동전화 사용을 금지시키고 있다.
이동전화 1천만 시대가 열린 우리나라는 이같은 모든 경우에도 강제 규정은 없다. 다만 사용자들에게 자제를 권고 내지는 촉구할 뿐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무분별한 이동전화 이용이 계속된다면 조만간 법으로 이를 구제하는 날이 올 것이다.
「휴대폰 공해」로 불리는 이 골치아픈 문제는 모두 「올바른 이동전화 사용 문화」가 정립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의 교통질서나 운전질서가 엉망인 것은 자동자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데도 운전자들이 이를 수용할만한 문화를 제대로 접하지 않은 탓이라는 사실과 비견된다. 대중화 일반화시대라는 것은 그에 걸맞는 사용 문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한민국 국민이면 남녀노소 모두가 필수품으로 이용하는 휴대폰에 대한 국민 공동의 정서적 규범이 확립돼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공공장소에서는 가급적 벨 소리를 작게 하고 전화가 걸려 오더라도 작은 소리로 통화하는 예의가 필요하다. 음악회나 성당의 미사에 참석했다면 가급적 휴대폰을 꺼 두는 것이 좋다. 전화는 가장 개인적인 영역이다. 사적이 내용이 흘러다닌는 것이다. 이것이 무차별적으로 외부에 공개되는 것은 자신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지만 다른 사람에게도 불쾌한 일이다.
병원 등에서도 이동전화를 꺼 두어야 하고 비행기 안에서도 사용을 자제하는 것이 도리이다. 특히 한국적 현실속에서 운전중 이동전화 사용은 금물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이 부분 만큼은 강제 규정이 도입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동전화를 꺼두거나 갖고 있지 않으면 무언가 불안을 느기는 「휴대폰 증후군 환자」들이 늘어 나고 있지만 휴대폰이 없을 때도 지구는 돌았다.
<이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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